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6)환경위기와 생명문화

새벽지기1 2016. 8. 26. 07:37


문화창조는 생명의 번영 위한 것

자연과 문화는 모두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목적 가져


  
 ▲ 신국원 교수 

미세먼지 경보로 떠들썩하던 지난 주 수요일은 공교롭게도 오래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의 기일이었습니다. 여든이 넘도록 건강하신 분이셨던 데다 담배 근처에도 안 가셨던 지라 의외의 진단에 모두들 크게 놀랬습니다. 지금처럼 대기 오염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더라면 생각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생태위기는 인재

대기와 수질 오염 같은 환경파괴와 그로 인한 생태위기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태평양에 대한민국의 13배 크기의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부유물 더미가 떠다닌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도 피부로 느끼지만 지금처럼 빙하가 계속 녹으면 머지 않아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환경재앙은 일부 지역이나 멸종위기종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총체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이 위기는 인재(人災)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홍수나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 조차도 오늘날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과 연관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기에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가 복잡하게 간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핵심에 우리 인간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대 문명이 생명체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상황이 절박해지자 과학과 기술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고 현대적 삶의 방식을 전반을 재조정하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간 산업화를 통해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고 애써온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환경 복원을 강조하는 “녹색성장정책”처럼 삶의 질을 무시한 경제 개발시대와는 아주 다른 비전과 실천이 그 예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환경보호를 넘어 자연을 신격화하거나 숭배하는 잘못된 사상까지 유행하는 판입니다.


창조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

생명은 창조의 극치입니다. 생명의 번영이 창조의 궁극적 목적임에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체에게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생명의 유지를 위해 있습니다. 인간의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특히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하셨고 또 모든 생명을 맡아 다스리며 돌보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 1:28, 2:15)


성경은 인간에게 환경을 돌볼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특히 생명을 보존하고 번성케 하는 사명이 핵심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 다스리며 지킨다는 원문인 “아바드”와 “사마르”는 돌봄의 의미가 강해 자연에 대한 지배보다는 보호와 육성의 개념이 두드러집니다. 거기에는 이른바 “문화명령”의 “정복하고 다스리라”(창 1:28)는 말씀에 덧붙여 생명을 번영케 할 책임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회복된 자연과 완성된 문화가 생명이 넘치는 세상으로 그려진 점도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 생명의 풍성함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계 21:1~4, 22:1~2)


세상은 본래 지극히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그 완벽하고 선하던 창조세계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오늘날 생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자연과 생명을 돌봐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타락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문화 속에는 어디나 삶을 파괴하는 요소가 잠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탐욕과 무절제한 생활 방식과 이를 부추기는 소비문화와 자본주의 물신숭배사상에 기초한 현대 문명은 생명을 파괴하는 제도적 장치들로 가득합니다.


생명문화를 위하여

사람은 자연과 문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현대 문명에서 자연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 세계관에 배치됩니다. 현대문명이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라”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기독교가 오늘날 생태위기의 진원이라는 주장은 철저히 오해에 근거한 잘못된 비판입니다. 현대의 위기는 오히려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따라 세계를 지배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근대적 세계관의 결과입니다.


창세기의 “문화명령”(1:26~28)은 결코 인본주의적인 자율적 세계 지배를 정당화해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자연을 돌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희랍철학이나 불교처럼 물질 세계를 부정하거나 비하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선한 창조를 믿고 궁극적으로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으며 세상도 온전히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이 제1의 환경이라면 인간이 만드는 문화는 제2의 환경입니다. 자연과 문화는 모두 생명을 위해 존재한다는 동일한 근본 목적에 있어 일치합니다.

창조주의 청지기로서 문화창조는 생명의 번영을 위한 것입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것은 바른 문화가 아닙니다. 세계를 돌봄이 없는 정복이란 파멸적인 우매일 뿐입니다. 생태위기는 생명의 존엄성이야 말로 문화의 보편적 가치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물론 생명의 존엄성 주장의 이면에는 다양한 종교와 이념이 있을 수 있기에 바른 성경적 반성이 중요합니다. 기독교적 생명문화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이를 돌볼 청지기임을 인식함과 동시에 자연은 피조물이며 숭배의 대상은 아님을 분명히 하는 바른 성경적 세계관 위에 서있어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