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8)송구영신과 상구앙신

새벽지기1 2016. 8. 28. 09:22

회개와 감사로 새날을 결단합시다

의미 잃어가는 송구영신예배…믿음으로 내년 소망해야


  
 ▲ 신국원 교수 

망년회다 송년회다 해서 모두들 분주한 계절이 왔습니다. 며칠 후 그믐엔 동해안 가는 길이 북새통을 이룰 겁니다. 종로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는 인파가 넘쳐날 것이고요. 누구나 이맘때면 어떤 식으로 건 삶을 돌아보는 의례를 치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가 봅니다.



세월의 리듬

그런 마음은 우연히 드는 것이 아닙니다. 절기란 사람이 맞춰 살아야 할 창조질서의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망년회나 송년 행사는 공연한 야단법석이 아닙니다.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 모두 인생 만사에 “때가 있음”(전 3:1)을 가르쳐 주시는 “일반 계시”입니다.

2013년도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인생이 날아간다”고 했습니다(시 90:10). 인간은 창조주의 영원성 앞에 설 때에만 자신의 유한성을 진정으로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아쉬움과는 아주 다른 깨달음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 둘을 착각합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시간도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무한히 돌고 돌 뿐이라는 희랍의 영겁회기(永劫回期) 사상을 깨고 새 역사관을 세운 것입니다. 우주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생각은 성경 만의 독특한 관점입니다. 세월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에 마디가 있는 것은 창조주의 섭리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일깨우시는 장치입니다.


인생을 세는 지혜

나이는 숫자일 뿐이 아닙니다. 세월은 영적 의미를 새기며 세어야 합니다. 창조주께서 주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돌아보는 셈법이 필요합니다. 덧없는 세월을 한탄하기보다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산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지혜의 마음으로 지난날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뿐입니다. 내일은 소망할 따름입니다.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엔 목적을 이룰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할 일을 않고 짧음을 한탄만 한다고 했습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시험 전에 1시간만 더 있으면 하며 안달복달하는 법입니다.


영원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인생이 짧다고 불평하거나 안타까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낭비 없이 지금 하나님 은혜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인생이 짧다고 아쉬워하고 허무하다고 한탄하는 것은 세상도 합니다. 영적 공허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망년회와 송년회, 송구영신예배

  
 ▲ 일러스트=강인춘 

망년회는 섣달그믐께 모여 노는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일본 민속에서 왔다고 합니다. 글자대로 잊는 데는 술이 최고입니다. 말을 송년회로 바꾼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다행히 요즘엔 술판 대신 문화 송년회, 봉사 모임 등으로 참신한 변화의 움직임이 활발하답니다. 세상에서도 술로 찌든 문화를 바꾼다는데 성도들의 연말 행사는 더욱 의미가 깊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엔 송구영신예배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887년 섣달그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주도한 정동교회와 베델교회의 연합예배가 효시라고 합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회개와 감사로 내년을 결단하는 “언약갱신예배”였답니다. 요즈음 송구영신예배가 본래 취지와 달리 축복기도의 위주로 바뀌어 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탄절을 상인들에 빼앗기고 송구영신예배마저 기복적인 민속에 내어주면 안 됩니다. 절기는 구속사적 의미로 지켜야 합니다. 인간적 기억은 회한만 있고 전망은 불안뿐입니다. 믿음만이 어제의 인도를 감사하며 내일의 도우심을 소망할 수 있게 합니다. 한 해를 잊어버리려는 망년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회고와 전망으로 회개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올 연말은 한 해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믿음으로 새날을 소망하는 상구앙신(想舊仰新)의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