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10) ‘점’이 필요 없는 세 가지 이유

새벽지기1 2016. 8. 30. 21:51


우리에겐 기도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 의지하고 순종하면 됩니다


  
 ▲ 신국원 교수 

TV 코미디프로 <개그콘서트>에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잘생긴 남자는 바람기 때문에 안 되고, 나만 바라보는 남자는 집착해 문제고, 보통 남자는 죄다 늑대라 그렇답니다. 오늘은 “점을 칠 필요 없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해볼까 합니다. 매년 정초엔 토정비결이 베스트셀러고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루다 보니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미혹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미래가 있기에

불신자들은 자신의 운명과 미래가 궁금해서 점을 칩니다.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장래에 어떤 은혜를 소망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압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 우리 모두 부활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복된 영생하게 될 것을 밝히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될 일을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언약은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과 특히 구속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로 보이신 뜻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설교자도 성경을 통해 밝히 보이신 복음의 소망을 전합니다.

점술은 영어로 행운말하기(fortunetelling)입니다. 미래말하기(future-telling)가 아닙니다. 성경이야기(biblical storytelling)는 지난날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 될 일을 보이는 비전텔링(vision-telling)을 합니다. 성경은 하늘가는 밝은 길을 열어 보여줍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는 말씀(시 119:105)을 따라 한걸음씩 나가면 됩니다.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점을 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업이나 입시나 결혼 같은 중대사를 놓고 쉽게 결정할 수 없을 때 점을 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예언기도를 받으러 다니기도 합니다. 무속적 문화가 신앙과 혼합된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중대한 결정 앞에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로 그것을 이깁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점괘는 <개콘>의 대사처럼 “요물”입니다.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믿음의 반석 위에 서게 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권 사상 또한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마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믿음의 삶이 복된 길이기에

  
 ▲ 일러스트=강인춘 

점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운명을 마음대로 좌우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결국 점술은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매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삽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이 노랫말엔 세상과는 분명히 다른 인생관이 드러나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으로 살게 하시려고 인생사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으신 부분이 있습니다.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게 하신 것은 “장래를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전 7:14). 하지만 인생 만사엔 때가 있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십니다(전 3:1, 11).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손에 쥔 것처럼 행하는 본을 보였습니다(히 11:1).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그들을 “벗”이라 칭하셨습니다.(약 2:23).

믿음으로 매일을 주 앞에서 사는 것이 개혁신앙의 현찰 가치입니다. 코람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그것입니다. 소요리문답 첫째가 가르치듯 올 한해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즐거워하며 삽시다. 삶은 궁금하거나 불안하거나 내 뜻대로 좌우해야만 복이 아닙니다.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이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입니다. 할렐루야!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