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4)성정치학을 넘어서

새벽지기1 2016. 8. 23. 07:44


전통적 성윤리 파괴하는 지적 폭력

정결한 윤리 기초한 건강한 공동체 노력 잊지 말아야


  
 ▲ 신국원 교수 

서울의 한 일류대학 캠퍼스에서 “나를 강간하라!”라는 주제로 이른바 ‘성정치문화제’가 열린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표제만 보면 성폭력에 대한 항의처럼 보이나 실상은 동성애 옹호가 핵심이었습니다. 이듬해는 아예 “동성이몽 이구동성”이라는 야릇한 구호를 내걸고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이를 전후해 여러 대학들에서 동성애 동아리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족되었습니다. 이런 운동은 정당화를 위한 이론적 기초를 ‘성정치학’에서 가져옵니다.


성정치 이론

<섹슈얼리티:성의 정치>의 저자 제프리 웍스는 ‘성정치’란 “성차(性差, gender)와 성적 분화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정의합니다. 본래 1970년대 초 페미니즘에서 사회구조를 남녀 간의 권력관계로 해석하며 논쟁을 일으키려 사용했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정치 문화제의 주장은 거기서도 훨씬 더 나아갔습니다. 성정치 문화제를 대변한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라는 글은 성에 관한 세 가지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즉 ‘이성애 중심, 성인 중심, 그리고 생식 중심의 성’을 정상으로 보고 다른 형태의 성을 변태나 퇴폐로 규정하는 상식을 분쇄하려 합니다.


성정치학은 성의 해방을 주장하던 성혁명과도 분명히 다릅니다. 성혁명은 성인의 성적욕구는 사적인 문제이므로 윤리나 법규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성정치는 성을 정치화 하려 합니다. 좌파 운동권이 사회를 경제와 정치의 계급투쟁으로만 해석하려는 것처럼, 성정치 운동가들은 남녀와 성적 취향들 간의 투쟁으로만 보려 합니다.


성정치학은 성이 인간의 본질이요 문화 형성요인이라는 프로이트적 세계관에 서있습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윤리도 모두 ‘권력의지’의 반영이라는 니체의 사상도 한몫 거듭니다. 문화-사회를 유물론적으로 파악하는 면에서는 마르크스적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절대적 규범을 폭력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해체를 시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움을 받습니다. 포스트모던 사상가인 미셀 푸코의 글들이 성정치학의 교과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성정치의 전략

성정치는 성의 개방을 말하는 성혁명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사회변혁운동입니다. 성정치는 전통적인 성담론을 해체하려 합니다. 나아가 성에 대한 지식체계 전반과 성윤리며 규범을 바꾸겠다는 실천적인 운동입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성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려는 대신에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성정치학은 성적 차별에서 비롯된 각종 불의와 폭력을 제거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임을 강조합니다.


물론 성정치 운동가들이 말하는 성폭력이란 강간 같은 성범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성애와 출산을 위한 성을 정당화하고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모는 것을 다수의 폭력이라고 규정합니다. 특히 동성애를 비롯해 소위 ‘변태적 성’은 실상 아무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데 죄악으로 간주되어 억울하게 핍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전통적 성윤리는 자연적이거나 절대적 규범이 아니라 다수의 성적 취향에 기댄 권력이요 횡포일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성적 취향이 인정받는 성적 다원주의의 실현과 특히 억압받는 성적 소수자의 해방입니다. 그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운동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근거로 주장합니다.


이들은 미래 사회와 문화 형성을 향한 투쟁이 성이라는 전략적 지형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은 문화의 핵심적 요소이므로 이를 장악하고 주도하는 것에 따라 사회가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쾌락적 분위기와 과연 그 속에서 성적 욕망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들의 생각이 터무니없는 공상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적 비판

물론 성정치학은 이론이나 사회운동 전략에 있어서도 잘못되었습니다. 성을 정치적인 이슈로 바꾸어 놓는다고 해서 윤리적 책임이나 죄의식이 소멸되거나 덜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적 삶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오직 상황을 악화시킬 따름입니다. 이는 동성애적 성향을 놓고 갈등하는 이들로 하여금 유일한 치유의 가능성마저 원천적으로 잃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정치학은 지적인 폭력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정치가 일부의 주장에서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지금도 잊을 만 하면 여러 대학들에서 비슷한 행사들이 개최되곤 합니다. 실제로 그런 삶은 사는 인기 연예인들을 통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와 신앙의 부모들이 이런 현실에 대해 의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이런 문화에 대해 분별력을 가지고 바른 삶을 살도록 지도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입니다. 정결한 성적 윤리에 기초한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과 공동체의 삶만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된 삶의 거룩한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길입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