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1)화려한 문화, 거룩한 문화

새벽지기1 2016. 8. 18. 12:55

거룩한 변혁의 비전을 품으세요

대중문화의 전방위 공세에서 교회를 바로 세워가야


  
 ▲ 신국원 교수 

총신대학교 캠퍼스엔 지금 종교개혁 문화행사가 한창입니다. 술판으로 시작해서 춤판으로 끝난다는 것이 요즘 대학축제입니다. 하지만 사당골에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하셨다는 루터의 첫째 선언으로 시작해 “하늘나라는 고난을 통해서 들어간다”로 끝나는 95개조로 마칩니다. 새삼 총신 학생들이 귀하게 보였습니다. 세상과 다른 기독교 문화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고 다른 대학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화시대와 그 그늘

그런 바람은 대학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향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술판과 춤판인 것은 캠퍼스만이 아니니까요. 십여 년 전 우리는 국민소득 만불 시대에 진입했다는 소식에 환호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경제의 번영이 축복만은 아님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고삐 풀린 쾌락 추구가 국민 정서를 망치고 퇴폐적 오락은 사회 안팎을 병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끝없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쏠려있습니다.


지난날 우리 문화현실은 척박했습니다. 먹고 사는 일 외에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이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가 사회보다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었고 주변문화가 강하지 않았기에 대항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지금은 세상의 문화가 엄청난 양적 질적 우위를 점하고 교회를 주눅들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화려함은 성도들마저 매혹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민주화가 정치적 욕구의 분출을 가져왔듯이, 21세기의 한국문화는 쾌락추구의 폭발상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히 가난하고 힘들었던 지난 날을 모르고 자라난 소위 신세대들 사이에서 아주 심합니다. 끼와 발랄함이란 미명하에 그들을 부추기는 어른들도 있고요.


문화 이해와 전략의 필요

이런 변화는 이미 한국교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요즘 웬만한 교회는 가을철이면 며칠씩 문화잔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문화잔치를 본격적으로 열 형편이 안 되는 교회라도 보통 한두 차례에 걸쳐 문화특강을 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잔치 참여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교회가 문화에 신경을 쓸수록 오히려 젊은이들을 잃는 것 같이 보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문화추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문화에 무관심하고 이를 일깨울 전문가도 없다 보니 매사가 서투릅니다. 현실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연구가 없으니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히 총체적 대책의 부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합니다. 세상 문화의 힘이 날로 강력해져 가는 가운데 거룩한 문화는 점점 힘과 매력을 잃고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날 많은 이들은 부패한 문화 속에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특히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문화에 건강한 삶이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오염은 물과 공기의 환경오염보다 훨씬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이를 간과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꿔야 할 교회가 역으로 문화의 악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화 변혁의 소명과 비전

이러한 문화가 화려하게 피어날수록 우리는 신앙생활에 장애를 느끼고, 청소년의 정신과 육체는 멍들고, 사회는 죄악에 물들어 갈 것이 뻔합니다. 특히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신앙인들은 이런 문화에 저항하다가 생활 기반을 잃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 경건의 이름으로 문화를 도외시하려 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처럼 강도당한 사람을 피하는 것 같은 무책임한 행동이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사는 사회와 문화의 영적 기초가 기독교적 삶의 원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화를 떠나서 광야로 나가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문화에 대해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 날 기독교인들이 항상 그들의 문화에 완전한 대안은 내어놓고 전폭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과 같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노력으로 당대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이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 시대의 문화의 영을 분별하고 기독교적 원리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안목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문화를 복음의 능력으로 변혁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공세로 어려움에 빠진 교회를 위해 오늘날도 이러한 문화변혁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급변하는 문화현실, 특히 대중문화의 영을 분별하는 안목을 갖고 그에 따른 바른 전략을 갖출 때, 우리는 이 시대의 문화를 바로 비판하고 변혁하므로 치유하는 임무를 보다 더 잘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