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개혁파 진영의 함정: 균형과 능력의 결여 / 로이드 존스

새벽지기1 2016. 7. 29. 11:56


1969년에 미국에서 보낸 5개월은 로이드 존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6월에 열린 그레이엄 전도 대회는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다. 오락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였다. 1957년에 그는 예배에 음악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 때문에 혼란스러웠는데, 지금은 박수, 갈채와 환호가 등장한 것으로 말미암아 그 이상의 악화가 초래되었다고 믿었다. 복음 전도에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요소는 자칭 회심한 자가 대중의 반응에 따라 자신을 위탁하라는 결단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러 면에서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로이드 존스는 지적했다.

 

로이드 존스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역사와 메이첸이 세운 새로운 교단에 대해서 말했다.

1937년 1월에 메이첸이 죽자 이 교단은 둘로, 곧 정통 장로교회와 성경 장로교회로 갈라졌고, 이후에 성경 장로교회는 다시 갈라졌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기본 교리에 대해서는 일치했다. 일반적으로 미국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힘을 모아 기본 진리를 고수하는 것보다 그들을 갈라놓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 1966년 말 존 머리의 은퇴, 1968년 에드워드 영의 죽음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초기의 교수들이 다른 교수들로 대체되는 일 등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분명히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개혁파 진영 안에는 설교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한 요소는 개혁파 교회들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그리스도인이고, 그러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련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관념이었다. 설교는 강의가 되어 버렸다. 지나치게 지성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설교자들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적용“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코 겸손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교리로서만 알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정통 개혁파 교회 안에서 완고함과 피상적 경향을 발견했다. 그들은 긴 설교를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침례교회가 설교를 더 잘 듣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을 종종 확인했다.

 

개혁파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유해한 요소를 로이드 존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네덜란드의 헤르만 도예베르트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냈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의 중대한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주로서의 권세” 아래 모든 면에서 세상을 이끄는 목적을 갖고 창세기1장27절의 문화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견해를 취하는 사람들은 복음주의자들이 개인적 구원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스도인은 밖으로 나가 모든 영역을 장악해야 한다고 한다. 학교, 정치, 경제, 무역거래 등 모든 분야가 기독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프랜시스 쉐퍼를 이런 종류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지만 대중화시킨 장본인으로 간주했다. 극단적으로 몰고 갈 때 이 운동의 결과는 반(反)교회와 반(反)설교가 되었다. 이 사상이 우선권을 두는 것은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킬 필요성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지성적인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그가 “매우 행복한 6주간”을 보낸), (이 연속강연이 ‘설교와 설교자’의 책으로 나옴-요약자주)의 경향이 중요한 교훈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정통 장로교회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지키기 위해 한 마디 하고 싶다. 1920년대에 자유주의 신학 운동이 장로교회 도처에서 큰 힘을 갖고 침투해 들어왔다. 이때 보수적인 사람들은 방어적인 입장을 취했고, 그래서 그들이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을 때 최고의 관념은 정통성의 보루를 굳게 세우기 위한 신앙의 변증이었다. 근본주의자 역시 신앙을 변증했지만 비지성적인 방법으로 변증했다. 신앙의 변증은 지성적인 방법에 따라 더 학문적이고 더 지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균형의 결여와 생명력 및 능력의 결여가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피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와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게 만드는 상황을 그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상황의 희생자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상황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거짓 입장에 아주 쉽게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 의해 통제를 받은 입장에 따라 견고하게 통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미국에 5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제가 배운 중대한 교훈이었다.

 

-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평전 3』, pp 33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