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옥한흠목사

목회의 진가(眞價)

새벽지기1 2016. 7. 29. 11:15


목회의 진가(眞價)는 ‘영향력’에 달려 있다. 그 영향력이란 어떤 것인가? 담임목사를 통해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 변화가 자신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교회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간증거리를 갖게 되는 사람들이 늘수록 목회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사이비 집단을 이끄는 교주들에게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영향력이다. 그것이 악한가 선한가는 여기서 논의하지 말자. 어떤 모양으로든지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사실만을 확인하도록 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영향력만은 확실해야 할 것이다. 

 
영향력이 별로 없는 목회, 그것은 하나의 직장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역은 될 수 없다. 이런 영적인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면, 흔히들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소수의 지도자들을 연상하게 된다. 만일 목회자의 영향력이 모두 다 그런 것이어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목회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제자훈련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우리 목회자들이 기대해도 좋은 영향력은 아주 평범한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스펄전처럼 천부적인 설교자가 아니라도, 빌리 그레이엄처럼 수만 명의 청중 앞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해도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는 영향력을 나는 정말 소박하고 작은 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몇 명의 자매들 혹은 형제들과 함께 조용한 방 안에서 말씀을 앞에 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은혜의 보좌 앞으로 서로 손잡고 나아갈 때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나의 학문적인 지식이나 학위를 들고 나올 필요가 없었다. 나의 거룩함을 특별히 내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목회자로서의 영적 권위를 앞세울 이유도 없었다. 비상한 기억력이나 남다른 달변을 요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필요한 것은 한 영혼을 무척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함께 은혜받고 싶어하는 영혼의 갈증을 가지고 좀더 낮은 자리로 내려 앉아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되었다. 그 나머지는 성령께서 적절하게 도와 주셨다. 내가 은퇴할 때 받은 수많은 감사 카드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행복한 평신도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헌신하는 평신도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평생토록 지키고 나아가야 할 평신도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해주신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 정도의 영향력은 목사라면 누구나 기대할 수 있고 또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지 못할까? 수년간 목회를 해왔어도, 자기로 인해 변화를 받고 전과는 다르게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하는 그런 목회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작은 자, 낮은 자리, 은밀한 기쁨이 샘솟는 자리를 무시하고, 너무 큰 것에서 영향력을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님은 어떠하셨는가? 한번쯤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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