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옥한흠목사

편중목회(偏重牧會), 그 후유증

새벽지기1 2016. 7. 31. 07:01



지난 9월 8일부터 10일까지 나는 장로회신학대학에서 신대원생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인도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번 요청을 받았으나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늘 내 마음에 부담으로 남아 있던 집회였다. 낮부터 밤까지 매 시간마다 학생들은 너무나 진지하게 경청해 주었다. 물론 제자훈련과 미래 목회에 관한 내용이었다. 첫 시간에 나는 왜 한국 교회가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면서 특별히 ‘현대 선교 역사상 위대한 한 편의 드라마’라고 까지 극찬을 받았던 1950~80년대의 부흥기가 남긴 후유증의 하나인 ‘편중목회’를 지적했다. 그것은 지금 목회 현장에서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 중 하나는 설교와 훈련 가운데서 설교에만 매달리는 설교 만능주의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성경의 약속과 명령 가운데서 약속에만 매달리는 “주시옵소서” 현상이다. 설교와 훈련은 치유와 더불어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아우르는 핵심이다. 이런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고 있는 목회자는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등한히 하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 설교와 훈련이 균형을 잘 이루어 영육 간의 치유가 일어날 때 그 목회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한때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이 물량주의에 오염되고 말았다. 어떻게 하든지 많이 모으고, 크게 짓고, 넘치게 거두는 자가 성공한 목사로 대우받는 목회문화에서 이런저런 균형을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손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교회를 빨리 부흥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목회자들은 인기 있는 설교가 그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바울처럼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하는 훈련의 길은 너무 험하고 멀어 보였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격과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향하는 훈련은 변두리 사역으로 밀어내버리고, 오직 설교 하나에만 성도들의 영적 생명과 건강을 담보하는 목회를 선호하게 되었다. 물론 열심히 가르치기도 하고 나름대로 훈련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목회의 구색(具色)을 맞추는 프로그램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평신도가 예배 군중 아니면 설교 마니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좋은 설교들을 아무리 들어도 깊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무감각한 군중, 그래서 사회에 나가 작은 예수로 살기에는 너무 무력한 종교인이 되어버렸다.


성경에는 화려한 약속들이 포도송이처럼 많이 달려 있다. 언제든지 믿고 구하면 얻을 수 있는 축복들이다. 그러나 그것뿐인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할 준엄한 명령들도 굉장히 많다. 그런데 부흥기를 맞아 양적 성장에만 온통 정신을 빼앗긴 우리는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왜? 인기가 없으니까. 부담스러우니까.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모이기만 하면 “주시옵소서”를 반복하는 앵무새들의 새장 같다는 이미지를 풍기게 만들었다.


요즘 교회에서 순종하지 못하는 죄를 무섭게 책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100년 전 우리의 선조들처럼 눈물 콧물 훔치며 땅을 치고 회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그들에 비해 우리가 죄를 덜 짓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대체 뭘 믿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버티는 것일까? 누가 이렇게 ‘간 큰 예배자들’을 만들어놓았는가? 바로 우리 목회자가 아닌가? 주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우습게 보는 교회가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으며, 무슨 힘으로 이 악한 사회에서 도덕적 권위를 세울 수 있겠는가?


제자훈련 목회는 무엇보다 목회에 있어서 이 잃어버린 균형을 잡아 주는 데 강점이 있다. 그래서 제자훈련 목회에 모든 것을 걸고 헌신하는 동역자들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교회를 침체에서 건질 수 있는 주역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집회 기간 내내 나의 설교를 경청해 주던 신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면서 나는 한국 교회의 내일이 아직은 밝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출처] 9. 편중목회(偏重牧會), 그 후유증|작성자 하나님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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