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찰스 스펄전

유일한 기초(2)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복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찰스 스펄전

새벽지기1 2016. 5. 19. 07:32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복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사이비 복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한 때는 "다른 복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으나, 곧 수정하여 "다른 복음은 없다"고하였습니다. 복음은 오로지 하나이며, 둘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복음은 단 하나인 것입니다. 두 분의 구세주가 없었고, 두 번의 구속하심이 없었듯이 두 개의 복음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의 구세주와 한 번의 구속하심은 복음에 있어서 절대 불가결한 것이며, 복음은 단 하나뿐입니다. 복음의 기초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다른 기초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을 중보 하시는 분은 오로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신 어떤 것을 너에게 전하라 하셨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나는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사이비 예언자이며 하나님과는 무관한 자입니다. 그리 고 또 설사 주교의 말이 종교회의나 교회에서 행해진 말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과 다르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이전과 그리스도 이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둘이나 셋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을 경우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며, 하나님은 계시를 봉인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다른 음성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는 비참해질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양떼들이라면, 낯선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 10:5) 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복음은 오로지 중보자 이신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선포됩니다. 그렇지 않은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참된 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찬양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신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이 충만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우리 의 병을 고쳐주시고 슬픔을 없게 해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라거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복음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찬양되지 않는 설교는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의 중보자이실 뿐만 아니라, 복음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가 그분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구원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는 죄 사함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는 의롭게 되며,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 우리는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신자들에게 완전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죄인들에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 그리고 거룩함, 구속하심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들려 올려져서 영원히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되는 모든 축복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충만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절정이며, 본질이며, 극치이며, 자랑거리이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람의 행위나 목사가 행하는 의식이 근본적인 위치를 점하는 그런 복음을 듣게 된다면, 그런 가르침은 거부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 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19).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설교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설교할 수 있도록 합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고 하신 말씀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중에서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오늘의 본문을 상기하셔서 그리스도와 무관한 복음은 결코 가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교리에 대한 가르침이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건조한 훈계조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택함을 받음에 관한 교리를 설교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교한다면 그것은 기초를 무시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기초를 무너뜨려 버리게 되면, 벽은 휘고 담은 휘청거릴 것입니다. 제가 최후의 은총에 관해 설교할 경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는 것이며, 모든 성도들의 은총은 예수님과의 결합에 달려있음을 설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의로움에 대해 가르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의로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본 교회의 이전의 목사님들이 설교하신 것들을 모아 보면, 그들은 구세주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 났던 사건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처럼 위대한 교리들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오히려 바울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교 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값진 피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듭남에 대해서는 그렇게 명쾌하게 설교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로 인해 성도들이 누리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에 관해서는 풍부하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용서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또한 거듭남은 그리스도께서 부르시는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신 것이 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구세주의 실제 삶과 죽음에서 일어났던 사실에서 도출해 내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경탄하는 바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에게 있어서 복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으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 보이셨으니" (고전 15:1~5).


바울에게 있어서 신성이란 사시고 돌아가셨던 육화된 신성, 즉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선포할 때는 그 복음을 주신 주님과 밀접하게 결합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포도밭에서 싱싱한 포도를 확인하여 바로 짜낸 즙이라면 그 포도즙은 대단히 맛이 좋을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포도주는 싱싱한 포도송이로 담글 때 가장 달콤한 술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리를 설교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에 대하여 설교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교리는 주님 무덤 입구에 있었던 돌과 같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리는 솔로몬이 앉았던 상아왕좌와 같아야 되며, 주님이 거기에 앉았을 때 찬연히 빛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설교하는 것도 괜찮지만, 그럴 경우에는 예수님을 현저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특히 주의해야만 합니다. 설교를 거의 다 경험으로 채우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는 그들을 저주하지는 않겠지만, 궁핍한 죄인들의 경험이 뭐 그리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을 통해서는 그가 저와 같이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겠지만, 훨씬 더 유용한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느끼시며, 나의 형제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알고 싶습니다.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난다면 그것은 오히려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공이든 실패든 그리스도가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경험은 오히려 복음을 손상시키게 됩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유일한 기초이십니다. 그 분을 떠나서는 결코 복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행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많은 설교를 해야 하고, 이 시대의 죄악에 대해 단호하게 비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대적인 죄악을 비난하고 선행을 찬양하는 데 그친다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게는 충분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불충분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선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범은 죄악을 퇴치하고 선행을 고무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완벽한 귀감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복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하셨을 줄로 믿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