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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15 (엡1:11-14 )(2) / 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5. 2. 06:47


성경: 엡1:11-14절(2)


1. 성령으로 인침

우리는 사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구속받을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구속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성령의 사역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부가적인 진술은 체험적인 입장에서 특별히 중요성을 가지는데, 복음에 관한 모든 진리와 복음 안에서 우리를 위해 제


공된 모든 것을 확신케 되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과 이러한 일들의 위대함 중 얼마를 우리가 시간 세계에 살고 있을 동안에도 누릴 수 있는 방식을 상기


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많은 방종과 실패를 자행하는 것은 바로 이 진술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 원인이


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위치를 잘못 지키고 있다거나, 우리의 쓸모가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약속의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구절 속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체험을 하고 있어야 할 충만함에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라.”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지상 생애를 마치시려 할 즈음에 “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고 말씀하셨고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15:11)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유산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기쁨과 평안과 행복으로 충만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치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인침”이라는 낱말이 가진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인침의 첫 번째 의미는 권위를 상징하고 나타냅니다.

도장은 어떤 계약이나, 진품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으로 진정성을 확증하는 것이며, 신빙성과 견고함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2) 소유자의 표지가 됩니다.

자기에게 속한 것에 대한 도장을 사용한 사람의 소유임을 증거합니다.

 

3) 안전 보장을 위해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어떤 우편물이 배송 될 때에 왁스 같은 물질을 녹여서 노끈 위에 짙게 바른 다음 거기에 인을 쳐서 왁스 위에 나타나게 함으로서 그 인이 손상 되었을 때 그 우편물에 누군가 손댔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이 무덤에 장사지내졌을 때 로마 당국자들과 유대인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그 몸을 가져다가 어떤 일을 할까 걱정하여 무덤 문에 돌을 굴려 막고 거기에 그것을 안전케 하려고 인을 쳐 봉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침이라는 말은 세 가지 주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침에 대하여 성경은 마3;17, 눅7:22, 요3:33, 요5:10, 요6:27, 요7:46, 요10:38, 요14:10 등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의 인침은 믿는 모든 자들에게 불가피하게 일어나지만, 믿는 것과 성령의 인치심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을 수 있고, 성령의 감동 또한 사람에 따라서 체험적으로 충만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성도들이 고대해야 할 위대한 복락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인치심의 두 일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 될 수도 있고, 긴 기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조 : 요14장, 요20:22, 행1:4~5, 행2장, 행8:12, 행15:6~9, 행19:2~6]

 

그 인침이 믿는 일 바로 뒤에 즉각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나 믿는 것이 먼저이고 인침이 그 다음입니다.

 

 

인침을 받는 것은 믿는 자들에 한합니다. 그러나 인침을 받지 아니하고도 성도일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들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것은 믿음이며, 그 사실을 확증하는 것은 성령의 인침입니다. 인침이 우리로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증해 준다는 예기입니다. 도장이란 언제나 그러한 일을 하는 바와 같습니다.

 

2. 인침의 본질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언제나 일치하는 방법과 방편들을 의지해야 합니다.

수세기에 걸쳐 교회의 지나온 과거는 모든 부흥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깨우치신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임하기 시작 되고나서, 그 부흥은 퍼져나갔습니다.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는 교회는 결단코 가치를 지속시키는 어떤 일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때 세상은 그것에 대하여 듣게 되고 호기심을 갖게 되어, 오순절 날과 같은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부흥의 줄거리이며,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에 관하여 이사야 40장에서 마지막장까지의 부분에서와 에스겔 36~37장에서 두드러진 방식으로 그 약속이 발견되며, 생명을 부어주시는 성령의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그 중에서도 요엘서 2장에 예언된 말씀에서 말세의 성도들에게 부어주실 “약속의 성령”에 관하여 가장 결정적으로 예언 되어있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자기의 사역과 우리 주님의 사역을 성령의 임하심의 차원에서 구분하여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같은 메시지를 가르치셨는데,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눅11:13)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체험을 주실 것을 사모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는 보다 더 의미심장한 진술로 이 문제를 직접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 받는 다는 것은 중생할 때나 회개할 때나 믿음을 가질 때의 성령의 역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오순절이 이르기까지 중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았듯이, 사도들은 오순절 날 이전에 중생해있었고, 그 후에 성령을 받았으며, 성령을 받기 이전에 이미 주님을 믿고 회개 하였으며, 거듭나는 중생을 통해서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1장에 나타난 사마리아 사람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은 믿음을 행사하고 있었고 거듭나 있었으며 회개하고 믿어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은 “성령의 인침”의 의미에서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는 것은 믿음을 가지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영적 이해를 위해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기름부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성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성령의 인침을 받는 것은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한 사건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세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약속, 곧 우리가 이 기업을 누리러 들어가고 있다는 약속을 “인쳐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친히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임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에게 속하여 있음을 보증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런 정황들과 증거로 볼 때 성령의 인침이 없는 사람도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함, 성령을 받지 않고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고전12:3)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일 수가 없기(롬8:9)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인을 받는 것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침은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거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동안에 성령의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것이요, 도장을 찍은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의 논리가 성립됩니다. 믿는 성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성령의 내주”는 성도들이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성령의 인치심”은 언제나 성도들에게 확신을 주는 어떠한 체험으로 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새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보인 것과 같이 어떤 환각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의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이 “성령의 인침”, 즉 “성령의 세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찬미하고 마음이 끌어 올랐고, 살아 움직였으며,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였던 일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인치심에는 은사가 주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성령의 인침에서 궁극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은사가 아니라 우리가 기업을 받았음을,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성도 각 사람에게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나누어 주는 선물이지만 이것은 성령님께서 주실 수도 있고 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 이전의 믿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사도들은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같이 믿는 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종과 같이 후견인들 아래 있어서 자신들의 지위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아버지인 것을 믿었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자마자, 곧 인침이 임하자마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양자의 영을 부어 주셨기 때문인데, 곧 자기 자신의 아들의 영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것은 “양자의 영”이며 “아들의 자격을 주는 영”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인식하게 하는 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직접적인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롬8:16)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압도적인 체험입니다.

 

 

3. 우리 기업의 보증

우리는 이제 “성령의 인침”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확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에베소 사람들을 강하게 해 주고, 위로해 주며, 세워 주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거기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나.”라는 말씀을 더 가입시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인치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성령의 인치심”과 “보증”을 함께 연결하고 있는 방식을 보게 됩니다. 그는 고린도 후서1:21~22과 고린도 후서5:5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확고하게 서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의 전체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지성적인 이해나 지성적인 만족을 주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워 주고 우리를 견고케 하여 주며, 우리로 굳건한 그리스도인들로 만들며 요동치 아니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우리를 다른 어떤 것으로도 흔들지 못할 그러한 기초를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견고함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어떤 체험의 차원에서보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시고 의도하셨던 우리 지위의 위대함과 그 신분의 영광의 차원에서 우리 자신들을 바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제 “보증”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업을 이전하는 것과 관련하여 자주 쓰인 말로서, 사고팔고 할 때 바로 이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이 말은 일종의 서약조로 주어지는 보증금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로 계약금, 또는 서약금의 형태로 얼마간을 담보로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휘에는 더 가치가 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일종의 계약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지불할 총액의 분할금, 나누어 내는 양 중에서 1회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할부 판매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구속”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최종적인 완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완전하게 해방되고 완전하게 구원되는 하나님의 계획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복락이 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전달되어지고, 특히 “성령의 인침”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보배 피로 우리를 위해 확보하여 놓으신 것을 완전 충만하게 받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계약금(분할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체를 받기 전에 우리 기업의 일차적인 계약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업을 온전하게 받게 되는 날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안에 있는 모든 소유권이 완성되어 모두를 완전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일정한 수의 영혼들을 구속하시려는 완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측면에서는 “구속”이란 이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모아지는 바로 그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분깃으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다섯째는 모든 것의 목적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에 들어있습니다.

 

사도가 가르치고 있는 바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알게 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맛보기로 체험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다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무한하신 은혜와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맛보기를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증금으로 지불하신 1차분의 것을 맛보기로 맛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평강, 이런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까?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하심이라”는 말씀처럼 모


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해서 허용된 것이니 만큼,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


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