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1)

7장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

새벽지기1 2016. 4. 28. 22:30


7장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들

 

1. 하나님의 도덕적(공유적) 속성


1) 거룩하심

소극적 의미- 하나님께서 죄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관계 없으시다는 것.

적극적 의미- 본질적이고 완벽한 순결.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말한다

출애굽기 34장에서 모세는 마치 하나님을 본 것 같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압도되었다.

욥과 이사야, 에스겔도.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에 감명을 받았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이’(사40:25)라 부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6)라고 명령하신다. 구약은 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거룩하심의 결과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계시이다. 그 목적을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


성막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위대한 가르침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 설계되었다.

의식법들과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들에 대한 규정들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르침의 일부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합1:13).

주님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아버지’(요17:11)라고 부르셨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시71:22), ‘거룩한 종 예수’(행4:27), ‘거룩한 이’(행3:14)라 부르고, ‘성령(거룩한 영)에 대해 말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가장 숭고한 선포이며 계시이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거룩하시기 때문에 갈보리에서의 끔찍한 죽음이 없이는 우리를 용서하실 수 없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우리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히12:28)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친애하는 하나님’과 같은 표현은 없다.

불타는 떨기나무의 모세(출3장), 웃사의 사건(삼하6장),

율법이 주어질 때 산이 불타고 아무도 거기 접근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기사(출19:16-25).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의 참된 개념을 가르쳐 준다

죄가 무엇인지, 내 죄성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야 한다.

찰스 웨슬리는 ‘비열하고 죄로 가득한 나여’라고 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속죄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죄에 대한 속죄를 요구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2) 의로우심, 공의로우심

의는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다. 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실행하는 것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의 입법적 거룩하심의 표현이고, 공의는 사법적 거룩하심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의로운 요구들을 부과하시기 위해 율법을 제정하셨고, 공의에 의해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한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리신다. 의는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공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이 혐오이다.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드러나는 다양한 영역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며 하나님의 진노는 이것의 표현이라는 것.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도 의와 공의를 드러내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을 제공하심으로 죄사함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3;25).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들을 상 주신다. 하나님은 의롭다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만드신다. 그것이 우리의 성화이다.

이 일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책망할 것이 없게 되고, 심지어 그분 자신처럼 의롭고 거룩하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3) 선하심과 사랑

순서에 주의하라. 거룩함, 의와 공의/ 선하심과 사랑이다. 두 단어는 어느 정도 상호 교환이 가능하다.


선하심과 사랑의 구분

선하심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모든 피조물을 관대하고 친절하게 다루도록 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9).

사랑은 그분이 자신을 다른 존재에게 영원토록 전달하도록 만드는 속성이다(삼위일체 교리).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선하심과 사랑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신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5:45).


은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은혜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 혹은 사랑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복의 원천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친다. 모든 것은 영원하고 끝없는 은혜의 샘에서 나온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딛2:11).

딛 3장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장엄한 진술이다.

자비는 하나님이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인자하심과 긍휼도 같은 표현이다. 자비는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비참함 혹은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로와는 상관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이다. 각 서신서의 인사말에서 자비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시편 특히 103편에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영광스러운 진술이 나온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9:18).


인내와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모두 진멸되어 버렸을 것이다. 하나님이 완악하고 악한 자들을 참으신다는 의미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롬2:4).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

 


4) 신실하심

그분이 당신이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하늘에까지 미친다고 말한다(시36:5). 성경은 하나님이 언제나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며 언약을 결코 어기지 않으신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성경은 시련과 시험과 갈등의 모든 시기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실 것이며 분명 자신의 종들을 지키시고 구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3-24).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신의 궁극적 운명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는 것

허드슨 테일러,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라’로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당신이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매달리라. 하나님은 불변하시다.

 


2. 하나님의 속성을 살펴볼 때 주의할 사항

하나님의 속성들 중 어느 하나라도 따로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하나의 속성을 다른 속성과 대치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자비를 대조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면서 언제나 그리고 동시에 자비로우시다. 이 일에 오류를 범하여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속성 안에 전체로 거하시며, 하나님은 이 모든 속성을 동시에 소유하신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그분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다. 그분의 공의와 대립시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균형의 완전성을 우리의 사고에도 항상 유지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