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1)

8장 하나님의 이름들과 삼위일체

새벽지기1 2016. 4. 30. 09:23


8장 하나님의 이름들과 삼위일체


1. 하나님의 이름


1) 이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성품을 상징하는 경우를 시편 22:22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26절).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사람들이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이름들과 그 의미

, 첫 번째, 최고라는 의미이다. 힘과 능력, 즉 강력함이라는 개념을 전달한다.

엘로힘(복수형태). 하나님이 강력한 분일 뿐 아니라 두려워해야 하는 분이라는 개념을 전달하며,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와 관련하여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이름이다.

엘룐. 높고 고귀한 분이라는 의미이다.

아도나이. 전능하신 주, 만물이 복종하며 모든 사람이 섬기는 통치자라는 의미이다.

샤다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의 권능만이 아니라, 특별히 그분의 은혜와 자비, 그리고 사람들과 맺으시는 관계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통제권을 강조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언약의 이름.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는 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이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에게 스스로를 계시하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 사바오트-‘만군의 여호와(삼상1:3)’. ‘만군’은 천사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안전하다.

여호와 이래-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창22:14).

여호와 로페- 치료하시는 여호와(출15:26).

여호와 닛시- 여호와 나의 깃발이라는 의미. 이스라엘의 정복과 승리를 위함.

여호와 샬롬- 기드온에게 계시한 이름(삿6:24). 여호와는 우리의 평강이시라는 의미.

여호와 로에- 여호와 나의 목자(시 23)

여호와 치드케누- 여호와 우리의 의(렘23:6).

여호와 삼마- 여호와가 계시다의 의미(겔48:35).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하나의 인격으로서 행동하시고 자신을 계시하신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임마누엘

아들은 시간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권능의 통치자,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2. 삼위일체


1) 삼위일체 교리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삼위일체 교리는 가장 신비롭고 어려운 교리다

이 교리는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다른 무언가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이 교리를 생각해내지는 못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가장 독특하고 영광스러운 교리다

그럼에도 이 교리를 강조하지 않는 현상은 편안하고자 하는 바람, 경험에 안주하는 경향, 지적인 수고를 요구하는 일은 무엇이나 회피하려는 경향으로 등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게으름의 또다른 예가 아닐까.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해와 해에서 나오는 빛에 비유. 씨와 땅과 꽃에 비유. 성경에 계시된 신비 앞에 서 있다.

우리의 이해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한다. 경이와 경외감과 예배함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놀랄 뿐이다.

성경은 삼위일체 안의 세 복된 위격이 영원무궁토록 서로를 완벽하게 사랑해 왔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삼위일체는 성경에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는 교리다

성경에는 이 교리에 대한 명백한 진술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2)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삼위일체 교리는 세 하나님이 있다는 의미-이것을 삼신론이라고 부른다-가 아니다. 구약 전체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오직 유일한 참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계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6;4). 이스라엘은 다양한 신들을 믿는 민족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스라엘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유일성과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시다는 사실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 주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하신 것도 같은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다. 둘이 아니다. 야고보 역시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약2:19)고 말했다.

우리는 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님을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가장 깊은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신성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계시다. 이 셋은 한 하나님으로서,

본질상 동일하시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

 


3)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


성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성부가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씀도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두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신성만이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그리스도--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롬9:5).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딛2:13)을 기다리라.


복음서들을 읽어 보면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질 수 있는 속성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지고 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5;26)-하나님의 영원성.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6).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17:2).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불변성.

전능하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편재성. 예수님은 전지하시기에 모든 것을 아셨고 아무것도 그에게서 숨지 못했다(요2:25).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에 의해 존재하고 있다. 주님은 자신에게 심판할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시며(요5:27),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의 증거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3-4).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12;31).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또한 우리 주님이 자신과 성부께서 보내실 ‘또다른 보혜사’(요14:16)를 언급하셨다.

 


위격은 양태의 변화가 아니라는 사실의 증거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세 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위격만 있으며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신다. 하지만 그 한 하나님이 자신을 여러 다른 방식으로 계시하실 수 있다. 그분은 어떤 때는 자신을 성부로 계시하시고, 다른 때에는 자신을 성자로 계시하신다. 그리고 또다른 어떤 때는 자신을 성령으로 계시하신다’. ‘같은 사람이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설교자가 될 수 있다’. 성경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한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양태들이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 성경이 세 위격을 함께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세 위격의 존재는 확고하게 증명될 수 있다. 예, 동정녀 마리아에게 아들의 탄생을 고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 태어나실 성자의 능력이라는 말로 세 위격이 언급되었다.(눅1:26-38). 세례 때도 확인하게 된다. 성자가 물 속에 계실 때 성령이 비둘기의 형태로 그의 위에 강림하셨으며 성부 하나님의 음성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마3:13-17). 요한복음 14, 15, 16장을 주의깊게 연구해 보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15;26).


구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증거

성자가 성육신하시고 성령을 보내시기 전까지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완벽하고 분명한 형태로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구약에는 이 교리가 기록되어 있다. 엘로힘은 복수형이다. 하나님 자신을 복수 형태로 말씀하신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창3:22).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창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6:8). 이 용어들 자체가 삼위일체를 시사한다. 구약에 나타나는 언약의 사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현현이었다.

창세기 처음 부분에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한다. 선지자들에게 말하도록 하신 분은 성령이셨다. 성막을 지을 때 브살렐에게 임하셔서 정교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신 분도 성령이셨다(출31:2-5)..

 

4) 세 위격의 관계

성경 도처에 나와 있는 대답은 그들이 영원히 공존하신다는 것이다. 종속의 관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자라는 사실은 그분이 성부와 대등하시다는 의미이다.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거나 성부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본체의 형상’(히1:3)이시다.

 

요약. 삼위일체는 영원 전부터 신성 안에 존재해 오셨다. 아타나시우스 신조,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 역시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신다. 성부는 주님이시고, 성자도 주님이시며, 성령 역시 주님이시다. 그러나 세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주님만 계신다. 기독교의 진리에 의해 각각의 위격 자체가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그 동일한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세 하나님과 세 주님이 계시다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경륜적 삼위일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삼위 간에 구분이 존재함을 말한다. 이것은 삼위일체 교리의 가장 영광스러운 측면이다. 세 위격 간에 구분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구분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 위격 사이에 일종의 주종관계가 발생한다. 성부께서는 창조하시고, 선택하시며 구원의 계획을 세우신다. 성자는 성부께 보내심을 받아 이 구원을 이루신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구원을 적용하신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생각이다. 복되신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사역을 나누셨다는 것이다. 성자는 자신을 성부의 뜻에 맡기셨고, 성령은 자신을 성부와 성자의 뜻에 맡기셨다. 성령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자를 증거한다. 성자는 성부와 동등하고 영원한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사역을 성부로무터 받으셨다. 이것이 경룬적 삼위일체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가장 고귀하고도 가장 장엄한 진리이다. 이 모든 것을 이성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우리는 겸손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세로 이 진리를 계시된 그대로 받아들여서 경배와 놀라움으로 예배하는 자리에 나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지만 진리이다. 특별히 우리를 위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참된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