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에베소서강해

에베소서 강해 9 (엡1:5) / 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4. 24. 09:22


우리는 앞에서 구원의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고,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조건으로 회복시키고,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과 누렸던 교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5절에서는 우리를 보다 더 영광스러운 지점으로 인도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로 예정되었다는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진술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높은 승강기를 타고 오르는 것과 비교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최고의 영광스러운 관점을 가지고 일종의 플랫폼에 도달한 것처럼 말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떨어져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지옥의 형벌 밖에는 받을 것이 없었던 위치에 있던 자들 가운데에서 얼마를 하나님 자신의 아들들이 되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의 목적하심이었다는 말로 바꾸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 타락한 인류 중에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서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이요 목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운명을 받아 누리게 될 사람들을 택하시고 선별하시어 그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있어야 할 조치들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시는 구속의 사역일 것인데, 죄인 된 인간을 그저 용서하시고 하늘나라에 옮겨 놓으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어 놓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절대로 거룩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덧입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거룩함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선택받은 성도들만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영광스러운 위치로 신분의 승격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이렇듯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목적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이 이 장면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을 살펴보겠는데, 헬라어 원어를 문자 그대로 옮긴다면, “우리를 예정하사 자녀들로 받아들여지게 하셨으니”라는 식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로마법에서 빌려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로마법에서는 양자가 되면 그 양자가 된 사람이 그를 받아들인 사람의 이름을 따고 그의 소유에 대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양자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법적으로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게 되는데, 양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권한과 특권을 가지게 되고,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성품과 혈통에 관계없이 아버지의 지위에 관한 특권들을 모두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자됨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아들이 되어서 새로운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은 양자로 받아들여짐에 의해서 성품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되어,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이 되고, 위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용어가 전달하는 개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성품에 강조점을 두고 있지 않고 전적이고 법적으로, 우리가 서 있는 위치와 지위와 신분으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양자라는 것은 하나님과 새롭게 관계를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아들로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양자로 받아들여져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에 속한 특권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누리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격상된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너무도 초라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는 갈라디아서 4:1~5의 진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진정한 자녀임에도 아직 성장하지 않아 아버지의 정한 때가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정한 때가 이르기 까지도 그의 성품과 혈통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가진 지위와 법적인 신분에 있어서는 달라진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구속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런 특권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도 모릅니다.


세상의 것들은 온통 부패한 것뿐이라서 세상의 영광들도 썩어지는 영광일 뿐이며,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세상은 진정한 명예와 부요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하늘에 속한 어떠한 것을 말한다 해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하나의 목수로밖에 보지 않았고, 그 안에 있는 영광을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그것을 알았는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한 요한처럼, 그리스도께서 비록 종의 형체를 입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비쳐 나오는 영광을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변화산상에서 목격하였는데, 하나님의 양자로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의 영광도 그러한 영광과 유사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그것은 참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영광은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은 특권들 중에 참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가정의 일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들 자신의 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하신 아들에게 있던 동일한 성령을 우리의 마음에도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의 후사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최종적인 구속을 완성 받게 될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에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받게 될 것이며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벧후3:13)

성도가 세상을 판단 할 것이며 심지어 천사를 판단 할 것이라고 합니다.(고전 6:2~3)

우리는 천사들보다 더 높아 모든 하나님의 천사들을 판단하여 그들의 빛 됨과 순전함을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