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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10 (엡1:6 -1) / 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4. 25. 15:1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여 주셨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바람이지만 인간의 요청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며 인간 속에 있는 어떤 것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반응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 자신의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사도는 계속하여 이 진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는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어째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속의 뒤에 있는 위대한 동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는 궁극적인 목적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위대한 목적으로부터 나온 모든 복락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입기 위하여 선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데 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비춰 볼 때 우리 자신들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가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하여 다룰 때에는 언제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이 성경의 주제가 됩니다. 이 사건은 세상에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한 일에 대하여 우리의 반응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기는 합니까?


우리가 주말이나 어느 특별한 날에 야구나 축구 경기장에서 흥분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고 듣게 됩니다. 그리고 콘서트와 같은 집회장소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에 대하여 열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즐거운 일을 만나게 될 때에 그러한 일들에 대하여 열심 있는 반응으로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특별한 연예인들이나, 특정한 사람들에 관하여 반응하여 말하고 그것을 화제로 삼는 것에 열심인 것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할 때에 그런 반응들을 보이는지는 참으로 의문스럽습니다.


오늘날 교회 밖에 있는 대 다수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 꺼려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에게 준 인상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일어난 이 놀라운 사건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일에 실패한데 원인이 있는데, 우리는 사실 그 놀라운 일에 주인공이 되시는 분에 대한 찬미를 보이지 않았고, 우리가 해야 하는 바를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높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종교와 차이를 느끼지 못하여 그러한 자리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첫째 되고 가장 위대한 진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다는 것으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말은 구약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존전을 나타낼 때 “여호와의 영광”으로 쓰였던 말임을 발견합니다.


이제 천군천사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보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러한 다음에야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합니다. 구원이 언급되는 순간에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말하여 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생각하여야 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구원과 관련하여 생각 할 때에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고자 하는 그런 감정으로 넘쳐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그의 영광을 찬양하고자 하는 인식이 듭니까?


우리는 어떤 잘못된 행위를 한 것만을 가지고, 또 그 죄의 열매만을 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죄의 진면목은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하는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니, 즉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자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일이라는 소요리 문답의 제 일문에서 말하는 대로입니다.


우리는 과학자의 관점을 가지고 하늘을 쳐다보며 별들을 생각하지만, 시편 기자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별들을 지으시고 그 별들을 질서로 지어 놓으신 분이시며, 모든 행성들이 운행하는 길을 정해 놓으신 분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며,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19:1) 하나님의 영광은 이렇게 자연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인하여 눈이 멀어서 이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는 역사를 통하여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깊은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계획과 야망, 그리고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하여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러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계시며, 그 모든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노아의 홍수,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홍해가 갈라지는 것, 요단을 가르고 건너는 일,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는 일들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속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가장 충만하게 보는 것도 구속 안에서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꿈을 계획하고 지상 낙원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지만 현대 세계가 증거하는 바와 같이 그 모든 노력은 실패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의 구원을 고안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사단의 능력과 사망의 권능을 정복하시고 이기심으로 우리가 누릴 복락을 방해하는 모든 다른 것들을 처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나타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요구들을 만족시켜 드려야 했기 때문이며, 그 자격이 되는 분이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의롭다 하신 선언을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롬3:25~26)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영광을 보는 것은 그 은혜 가운데서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최종적으로 우리 안에서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내진다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5:16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들리게 하라.”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한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빼 놓고는 이 사람들에 관하여 설명할 방법이 없구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살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진리들에 비추어서 우리 자신들을 보아야 하는데, 사도는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고,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열납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누가복음 1:28에서 사용한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함께 하시 도다.”라는 말씀은 본문의 뜻과 같이 사용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사랑하시는 은총을 크게 베푸신 것을 아노라” 이것은 사도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확한 의미가 되는데, 그는 하늘의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향하여 하였던 말과 같은 것을 우리에게 똑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 은총을 입은 사람아”란 말은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여자들 중에 선택하사 그의 아들을 나게 하시려 하셨다는 것, 즉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태에 들어가서 그녀에게서 나게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우리에 관하여도 유사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들로 받아들여지기로 예정되었고, 이제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7에서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육신적으로 마리아에게 들어가셨듯이 그는 영적으로 그의 자녀들인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오셔서 거하시게 되어 우리는 성령의 거하시는 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크게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아 누리는 이 모든 특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