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늘과땅사람 62

하늘땅사람이야기18 -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독서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무거운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답답해서 던진 질문이겠지만 그 질문 속에 담긴 쓸쓸한 비애를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돈에 포획된 교회의 현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교회를 사고 파는 사람들, 목사 선정 과정에서 후임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지요? '저마다 절박한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쉽게 정죄하지 않으려고 애써 보지만 결국 도리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입니다. 부끄러움조차 없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종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부끄러움은 자기 평가적 감정입니..

하늘땅사람이야기17 - 이단자 칼릴

이단자 칼릴 어제 집에 잘 들어가셨는지요? 불통의 광장, 숨죽인 흐느낌이 조용히 일렁이는 광장, 차벽으로 둘러싸인 광장 저 너머, 농밀한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던 별이 제게는 큰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겨우 몇 시간 광장에 머물다가 집에 돌아왔는 데도 몸에 든 한기가 좀처럼 가시지를 않네요. 하지만 거리에서 노숙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니 차마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광장에서의 시간을 반추해 봅니다. 낮부터 밤까지 분향소의 조문 행렬이 몇 시간 째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김교신 선생의 글 '조와弔蛙'가 떠올랐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면서 다 죽은 줄 알았던 개구리가 꼬무락꼬무락 살아 있는 모습을 보며 선생을 사로잡았던 실낱 같은 희망을 저도 보..

하늘땅사람이야기16 - 목사 안수례를 앞둔 이에게

목사 안수례를 앞둔 이에게 화창하고 청명하여 오히려 서러운 날입니다. 꽃 시절을 한껏 즐거워 할 수 없는 나날입니다. 꽃 향기 저 너머로 처연하게 들려오는 피 울음소리를 차마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잃은 이 땅의 라헬들은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돌아갈 거액의 보상금 운운하며 사태를 휘갑치려 합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포획된 이들은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조차 꺼리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실종된지 오래입니다. 아무리 애써보아도 피눈물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세월호 문제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주류 종교는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 굴복한지 오래입니다. 한기총이 주최한 부활..

하늘땅사람이야기15 : 정신의 독립군

● 자기 확장의 기회 세상이 다 고요한 듯 싶구나. 모처럼의 휴일이어서인지 옆에 있는 공업사에서 들려오던 소음도 그치고, 재잘거리며 복도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고요함이 어찌나 좋은지 음악조차 틀지 않고 가만히 앉아 한가함을 만끽하고 있단다. 뒤꼍 문을 여니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수수꽃다리 새잎과 눈길을 주고받고 있더구나. 조심스런 눈길로 녀석의 수작을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마치 누군가의 밀회 장면을 엿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 새의 말을 알지 못하니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봄 신명에 지핀 생명은 매 일반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새의 벗되기를 자청해보았지. 새는 마치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연신 꽁지를 까딱거리더구나. 잘 지내고 있지?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하늘땅사람이야기14: 하나님의 비상소집 (2005.03.12)

● 평화복무 유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우중충한 날이 계속되어서인지 괜히 심란합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돌아와 사무실 문을 여니 마치 밤인 듯 싶게 어두웠습니다. 그 컴컴한 방에서 저는 둠즈데이(doomsday)라는 단어를 들은 듯 합니다. 잠시 그 어둠을 응시하다가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켰습니다. 방은 곧 환해졌지만 둠즈데이라는 불길한 단어가 제 마음에 남긴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창문 밖 저 멀리 전선에 앉은 까치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날갯죽지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모습이 꽤나 외로워 보이더군요. 물론 그 외로움은 제 심상의 반영일 터입니다. 오랫동안 그 새를 지켜보다가 문득 나를 지켜보고 있는 어떤 눈길을 느꼈습니다. 그 눈길은 품이 되어 저를 안고 있었습니다. 책상 앞으로 돌아와 수선..

하늘땅사람이야기 13 : 자비의 에토스

자비의 에토스 양목사님, 서울 생활에 잘 적응하고 계신지요?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서울은 여전히 타향인 것 같습니다. 잿빛 도시에서 부적응자로 살아가는 내게 서울은 '스올'입니다. 인류 최초의 도시 건설자가 가인이라지요? 그때의 도시가 지금과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나 실감나는 말입니까? 도시는 가인의 후손들이 배회하는 곳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인가요? 행복한 얼굴을 보기 어렵습니다. 틈만 나면 내가 산으로 달려가는 것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해맑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 마지막날 북한산을 느긋하게 걸었습니다. 하늘은 청명했고 바람은 제법 차가웠습니다. 볕 좋은 길목마다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등산객들을 보면서 양지꽃 무더기를 보는 것 같이 흐뭇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양지바른 어느 모퉁이엔가..

하늘땅사람이야기12 : 갈증을 다 채운 자에게 화 있을진저

● 사람이 된다는 것 김 선생님, 지금쯤 서남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머물고 계시겠지요? 지진과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태국, 몰디브… 그곳이 어디이든 퀭한 눈망울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물면서 말없이 그들의 손을 잡아 주실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해일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제일 먼저 제 입에서 나온 탄식은 "왜 하필이면 그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였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들려온 소리가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하신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

하늘땅사람이야기11 : 스스로 길이 된 사람

● 의외의 상황을 위한 여백 만들기 새해에는 좋은 계획을 세우셨는지요?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는 삶에 새로운 게 뭐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시간 속을 표류하지 않으려면 나름대로의 계획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학습 계획을 세우는 학생들처럼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매듭을 만드는 것은 삶의 지혜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년에 몇 차례씩 순례의 절기를 만들었던 이스라엘인들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크게 느껴집니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인가요? 잘게 분절된 시간 속을 걸어가면서도 '내 마음의 정처가 없구나' 하는 자각이 들 때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도 뭔가 가시적인 목표가 있을 때 '지금'이 탄력을 받는 것 같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계곡과 봉우리들을 여러 번 넘나들어야..

하늘땅사람이야기10 : 가면과 맨 얼굴

● 하나님을 배반하는 역사 "난 점점 기독교가 싫어져요." "난데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라면서요?" "그렇다고 하더라." "그래서 행복하세요?" "뭐야? 내가 왜 행복해?" "기독교인들의 뜻대로 되었으니 말이에요." "얘가 노골적으로 비꼬네. 부시를 당선시킨 그 세력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려니와, 기독교인들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과 늘 일치하는 것도 아니야." "그래도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승리주의와 편협한 도덕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참 유감스러워요. 부시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타겟으로 삼아 동성간의 결혼과 낙태에 반대한다는 도덕주의적 캠페인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라면서요?" "그렇다더라. 문제..

하늘땅사람이야기9 : 경계를 넘어

● 틀과 역동성 사이의 긴장 "무슨 영화 보고 왔니?"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village)요." "어떤 내용인데?" "공포 영환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구요. 시간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조차 알 수 없는 어느 외떨어진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어요. 그 마을의 한계는 숲이었는데, 그 숲에는 괴물이 살고 있어서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두려움이 마을 사람들을 지배해요." "결국 영화는 그 두려움을 깨고 누군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 구조겠네." "맞아요. 그런데 그 인물이 이 영화에서는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아가씨라는 게 다르다면 다른 거죠." "아가씨는 '순수함'을 표상하는 존재이니까 또 다른 의미의 영웅일 수도 있지. 게다가 앞을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