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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사람이야기 13 : 자비의 에토스

새벽지기1 2021. 4. 16. 06:41

자비의 에토스  

 

양목사님, 서울 생활에 잘 적응하고 계신지요?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서울은 여전히 타향인 것 같습니다. 잿빛 도시에서 부적응자로 살아가는 내게 서울은 '스올'입니다. 인류 최초의 도시 건설자가 가인이라지요? 그때의 도시가 지금과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나 실감나는 말입니까? 도시는 가인의 후손들이 배회하는 곳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인가요? 행복한 얼굴을 보기 어렵습니다. 틈만 나면 내가 산으로 달려가는 것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해맑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 마지막날 북한산을 느긋하게 걸었습니다. 하늘은 청명했고 바람은 제법 차가웠습니다. 볕 좋은 길목마다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등산객들을 보면서 양지꽃 무더기를 보는 것 같이 흐뭇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양지바른 어느 모퉁이엔가 철모르는 새싹이 돋아나 떨고 있지 않나 싶어 두리번거렸습니다. 다행히도 새싹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봄은 여전히 땅 밑 어딘가에 숨을 죽이고 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눈조차 내리지 않아, 땅 속의 씨앗들이 꽤나 추웠겠습니다. 우윳빛으로 꽁꽁 언 골짜기를 보면서 그 속에 살던 버들치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신동엽 시인의 시 <봄은>이 가물가물 떠올랐습니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아, 그렇지요? 봄의 고향은 우리들 가슴이군요. 제 아무리 호시절을 만나도 내 가슴이 겨울이면 겨울인 거지요. 거꾸로 제 아무리 힘겨운 상황을 만나도 내 가슴이 봄날이라면 봄인 거지요. 시인은 우리 가슴에서 움튼 봄이 하는 일을 이렇게 말하더군요.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우리 가슴에서 움튼 봄이 미움의 쇠붙이들 흐물흐물 녹여버리고, 녹은 그 물이 줄레줄레 흘러 메마른 땅을 적시는 광경을 생각하니 제 발걸음도 절로절로 움직였습니다.  

 

● 실향민 의식  

하지만 집에 돌아와 제가 처음으로 접한 소식은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 보유국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6자 회담 참가 명분이 마련되고 회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인정될 때까지 불가피하게 6자 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처럼 한반도에 조성되고 있던 봄기운이 다시금 냉전의 서리로 뒤덮여 스러져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마셔야 할 고난의 잔은 아직도 바닥을 보이지 않는 것인가요?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흘러야 우리 강토는 사람 살만한 곳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좌우 대립 시기에 지리산에서 죽어간 수많은 넋들을 생각하며, 지리산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배꼽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 믿음을 현실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던 목사님이기에 이번 사태에 대한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면서 먼저 그 땅의 명예 회복을 선언했습니다.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너를 두고 사람을 삼키는 땅이요, 제 백성에게서 자식을 빼앗아 간 땅이라고 말하지만, 네가 다시는 사람을 삼키지 않고, 다시는 네 백성에게서 자식을 빼앗아 가지 않을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겔36:13-14).   

 

땅과 사람은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제는 조금씩 실감합니다. '조국'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일렁이는 것은 그 단어가 담보하고 있는 역사의 무게 때문일 겁니다. 조상들의 피와 땀이 스며 있고, 흙으로 돌아간 그분들이 다시금 우리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는 곳이기에 이 강토는 우리의 몸과 같은 곳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젊은 사람들은 '국수주의'의 냄새가 난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이 몸 붙여 사는 땅을 하나님이 그 백성과 더불어 함께 머물고 있는 땅으로 인식했습니다(민35:34). 그렇기에 억울한 피가 땅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땅이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정말 너무나 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신원(伸寃)되기를 하소연하는 그 피들의 억눌린 외침이 잦아들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한번 한반도에 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네가 다시는 사람을 삼키지 않고, 다시는 네 백성에게서 자식을 빼앗아 가지 않을 것이다." 에스겔을 통해 주신 이 확언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목사님은 백무동 계곡을 함께 걸으면서 내게 생태마을을 세우고 싶다며 당신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계곡 사이에 틀어박힌 작은 마을을 지나칠 때면 아무에게도 말못할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때 산자락을 더듬는 목사님의 눈길은 세월의 풍상에 삭아버린 어머니의 슬픈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득했더랬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천민 자본주의가 산간마을에도 들어와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 자본의 편에 서서 그 부스러기라도 챙기려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거기에 맞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지요. 돈은 어느 곳에 가든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돈을 '맘몬'이라고 하신 것이겠지요. 마을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삶을 삶답게 하는 생활 조건으로서의 정신적 귀소(歸巢)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마을 공동체'에서 인류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런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래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어떤 의미에서 도시인들은 누구나 실향민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소설가 이문구님의 『관촌수필』은 우리가 느끼는 실향민 의식의 뿌리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는 관촌수필 연작의 첫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일락서산日落西山>에서 오랫동안 고향마을을 지켜온 왕소나무가 사라지고, 온 마을의 종가나 되는 양 당당했던 자기 집이 추레하게 퇴락한 모습을 보며 이렇게 탄식합니다.  < 그것은 왕소나무의 비운 버금으로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었다. 이제는 가로세로 들쑹날쑹, 꼴값하는 난봉난 집들이 들어서며 마을을 어질러놓아, 겨우 초가 안채 용마루만이 그럴듯할 뿐이었으며, 좌우에서 하늘자락을 치켜들며 함석지붕 날개와 담장을 뒤덮었던 담쟁이덩굴, 사철 푸르게 밭마당의 방풍림으로 늘어섰던 들충나무의 가지런한 맵시 따위는 찾아볼 엄두도 못 내게 구차스런 동네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실향민. 나는 어느덧 실향민이 돼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덜어버릴 수가 없었다. 고향이랬자 무덤[墓]들밖에 남겨둔 게 없던 터라 어차피 무심하게 여겨온 셈이긴 했지만, 막상 퇴락해버린 고향 풍경을 대하니, 나 자신이 그토록 처연하고 헙헙하며 외로울 수가 없던 것이다.>   

 

이게 1972년의 작품이니까 벌써 삼십 여 년 전의 마을 풍경이라고 보아야 하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퇴락한 게 어디 마을뿐이겠습니까? 우리 마음의 퇴락은 이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 방황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편리하게 살지만 마음은 비좁습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삶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에는 지시와 논리와 처세술과 하소연은 넘치지만 공동의 기억을 온축한 삶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공동의 기억을 잃어버린 문명  

어린 시절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여름 밤이면 수제비로 배를 채우고 왕겨 불 위에 쑥을 얹어 모기를 몰아내며 아버지의 무릎을 베개삼고 누워 은하수를 헤아리다가, 그도 심심해지면 아버지를 졸라 옛날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겨울이면 온 식구가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 속에 발을 뻗고 앉아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눴습니다. 출출하면 건넌방에 쌓아놓은 고구마를 꺼내다 벗겨먹거나, 밭을 파고 묻어놓은 무를 꺼내다가 벗겨먹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가족은 어쩌면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을 의미할 겁니다. 마을공동체는 그런 의미에서 다 한 가족이었습니다. 집안의 대소사를 모르는 이가 없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었으니까요. 산이 깎여나가고, 바다가 메워지면서 우리가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던 삶의 이야기와 공동의 기억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시인 고은 선생의 『만인보萬人譜』는 그렇게 속절없이 스러져 가는 기억들을 담아냈기에 소중합니다. 삶이란 인생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사건들 그리고 풍경들이 우리 가슴에 아로새긴 무늬가 아니겠습니까? 고은 선생이 만인보에서 되살려낸 그 수많은 사람들과 풍경들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모두의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인사불성으로 취해서도/입안의 혓바닥하고/배등거리 등때기에 꽂은 곰방대는/용케 떨어뜨리지 않는 사람"이었던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란다' 하고 가르쳐준 길잡이이기도 했습니다.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지게작대기 뉘어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던 머슴 대길이 아저씨는 마을 최고의 일꾼이면서도 시인에게 가갸거겨를 가르쳐준 스승이었고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습니다.   

 

이런 기억을 잃어버린 문명은 차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온기를 잃어버린 문명은 생명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게 마련입니다. 이 땅은 인간들의 거주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수많은 생명들의 삶터라는 사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지율 스님은 이 참담한 문명의 한복판에 밝혀진 등불이 아닐까요? 나는 사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100일에 가까워질 때 '그에게 삶의 세계로 돌아올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이미 죽음에 매혹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때로는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태도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작년에 '올해의 시민 운동가'로 선정된 직후에 가진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그의 진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운동이 이론보다는 감성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것을 근원적 체험이라 해도 좋을까요? 찢기고 짓밟히던 생명들이 지율이라는 몸을 빌어 자기들의 소리를 낸 것은 아닐까요? 

 

● 표징이 된 사람들  

이제 천성산과 지율 스님은 특정한 장소 혹은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표징입니다. 그것은 인간 중심적인 발전을 지향하는 문명의 대척점에 작지만 옹골찬 생명적 세계관의 표징으로 서있습니다. 정부가 대규모로 추진한 국책사업이 몇몇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을 견지하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생태학적인 균형을 염두에 두고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생명주의적 세계관을 굳게 붙들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 두 개의 세계관이 지금 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에발산과 그리심산 앞에 세우셨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요? 제게는 너무도 분명한 답이 다른 이들에게는 오답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가 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생명을 최고의 우선 가치로 선택하는 것이어야 함을 저는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성공과 출세를 신앙적으로 합리화하고 부추기는 종교인들을 바라보며 저는 아뜩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마커스 보그라는 신학자는 예수님의 삶의 지향을 '자비의 정치학'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경건한 종교인들의 '거룩의 정치학'과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면 세상은 정확히 둘로 나뉩니다. 정결-부정, 순결-더러움, 성스러움-속됨, 유대인-이방인, 의인-죄인, 남성-여성의 양극성이 그것입니다. 초기의 거룩의 에토스가 거룩의 정치학으로 관습화된 것은 바벨론 포로기였고, 그것이 강화된 것은 로마의 식민지 시절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거룩의 정치학을 택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주변인들을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목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거룩의 정치학의 그물을 벗어난 사람들, 땅의 사람들,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 말입니다. 예수님은 거룩의 잣대를 버리고, 자비의 에토스를 가지고 사람들과 만나셨습니다. 주님은 의인과 죄인을 가로지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지르면서 길을 만드셨습니다. 거룩은 나누고 자비는 하나되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 자비의 에토스가 아닐까요? 너무 감상적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저는 꽁꽁 언 땅을 걷는 비둘기의 빨간 발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인기척에 소스라치듯 놀라 달아나는 야생 고양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할 때도 있습니다. 어쩐지 그 생명과 나의 생명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괜히 가엾어 가만히 그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치기도 합니다. 물론 일상의 많은 순간 나는 자비의 마음을 잃고 허둥거립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들을 향한 자비의 마음이 은총처럼 찾아올 때면 내 가슴에는 한없는 평화가 밀려옵니다. 봄은 우리들의 가슴에서 움튼다는 시인의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잘리고 파헤쳐져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 땅을 소중히 보듬어 안고, 메마른 이웃들의 가슴 깊은 곳에 봄의 온기를 불어넣으라고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객소리가 길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살림살이가 힘겹다 해도 '그 길'을 함께 걷는 길벗들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봄빛 좋은 날, 가까운 산이라도 함께 걸으며 생명이 이루어내는 기적을 맘껏 즐겨보기로 해요. 하루하루 태초의 아침인 듯 늘 황홀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