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용섭목사 689

“성령이여 오소서!”(요 16:12~15)

오늘은 성령강림 후 첫째 주일이자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을 아버지, 아들, 영의 일체로 보는 개념입니다. 낱말 뜻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나 그것의 실질적인 깊이를 이해하기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을 우리와 똑같이 믿는 유대교인들은 삼위일체 개념을 거부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질이라면 결국 자신에게 기도를 드렸다는 말이 됩니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태입니다. 예수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신성 모독죄로 징계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오해를 넘어서려면 삼위일체 개념을 일단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오시는 영 신약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단..

하나님의 영과 양자의 영 (롬 8:14~17)

성령 공동체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단어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까다로운 단어는 ‘영’입니다. 보통은 성령이라고 부릅니다. 다르게도 표현합니다. 진리의 영,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생명의 영,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종의 영, 양자의 영, 우리의 영(프뉴마 헤몬)도 있습니다. 모든 표현의 중심에는 ‘프뉴마’라는 헬라어가 들어 있습니다. 프뉴마는 사전적 의미로 spirit, inner life, power, wind, breath, ghost 등등입니다. 도대체 영은 무엇일까요? 성령을 받으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는 사람일까요? 성령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의로운 자의 기쁨 (시 97:1~12)

오늘 설교 성경 본문인 시편 97편에서 우리는 하나님 신앙의 핵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키워드를 꼽는다면 ‘기쁨’입니다. 첫 구절인 1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마지막 절인 12절은 이렇습니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기뻐하라는 말로 시작해서 기뻐하라는 말로 끝나는 본문입니다. 중간에 나오는 8a절도 “여호와여 시온이 주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며 ...”라고 했고, 11b절도 “...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삶 자체가 힘든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인생살이에는 짜증 나거나 ..

새로운 계명 ‘사랑’ (요 13:31~35)

저를 비롯한 모든 설교자는 늘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설교 내용대로 사는가?” 오늘 저는 이런 질문에 가장 자신 없는 주제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최고 수준의 문학이나 예술만이 아니라 통속적인 문화 현상에서도 단골 주제로 등장하기에 누구나 알고 있다고 여깁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인 거 같은데, 요즘은 일상생활에서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부부나 연인들은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사이도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목사와 교인들도 서로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던 날 청와대에 모인 이들을 향해서 경상도 사투리로 “국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습관적으로라도 입 밖으로 내다보면 실제로 ..

영생과 하나님 (요 10:22~30)

유대인들의 질문- 그리스도론 오늘 설교 본문(요 10:22~30)의 내용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예수님은 당시에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에 관한 소문은 분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 16:13절 이하를 따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자 제자들은 자신들이 들은 소문을 전합니다. 세례 요한이 다시 등장했다거나 구약의 위대한 인물인 엘리야나 예레미야, 또는 여러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소문입니다. 지금도 유대교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의 삶 (계 5:11~14)

오늘 설교 본문인 계 5:11~14절을 대할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각자 다르겠으나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씀으로 들린다는 생각에서는 비슷할 겁니다. 일단 거기에 나오는 단어들이 너무 생경합니다. 보좌, 생물들, 장로들, 천사, 어린 양 등등입니다. 고대신화의 한 장면에 관한 묘사처럼 비칩니다. 아니면 SF 영화나 애니메이션 동화처럼 들립니다. 요한계시록이 고대 후기 유대교의 묵시문학이라는 장르에 속하는 글이라서 그렇습니다. 묵시문학은 극단적인 상징과 비유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글쓰기 유형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일종의 마법과 비슷한 세계 안으로 안내하려고 단단히 각오를 다졌습니다. 하늘의 외침 오늘 본문에는 두 번의 외침이 나옵니다. 한 번은 11절과 12..

예수를 ‘믿는 자’ (요 20:19~31)

도마 이야기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수식어가 붙은 이들이 몇 명 됩니다. 베드로에게는 교회의 반석, 또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자라는 수식어가 붙고, 요한에게는 사랑받은 제자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판 자라는 불명예가 따릅니다. 도마에게는 의심 많은 자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그 도마 이야기가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에 나옵니다. 본문 요 20:19절은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안식 후 첫날은 요즘 식으로 주일이고, 예수님은 안식일 전날 십자가에 처형당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든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샬롬’이라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행 10:34~43)

베드로의 설교 베드로는 가이사랴 주둔 로마 군부대에 속한 백부장인 고넬료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일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경건한 유대인은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동적 유대인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행 10:28 참조) 고넬료의 초대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을 성령께서 이끄셨다고 그는 판단한 겁니다.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베드로가 선포한 내용이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인 행 10:34~43절입니다. 그 선포의 핵심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에 관한 것입니다. 42절에 파격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

마지막 유월절 식사 (눅 22:14~23)

그리스도교 절기 중에서 성탄절은 날짜가 고정이지만 부활절은 유동적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유 절기인 설날이 음력을 따르기에 매년 달라지듯이 부활절은 유대력으로 니산월(1월) 14일에 시작하여 일주일간 계속되는 유대교의 유월절과 연동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페사흐, 헬라어로 파스카로 불리는 유월절은 재앙이 지나갔다(passover)는 의미입니다. 출애굽을 모티브로 하는 이 유월절 절기에 유대인들은 출애굽(Exodus) 공동체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유대인 가정은 유월절이 시작하는 저녁에 모여서 일정한 의식을 행했습니다. 양고기와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가 주요 식단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많은 유대인이 유월절에 성지순례차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성지순례에 나섰..

하나님의 새로운 일 (사 43:16~21)

오늘 설교 본문인 사 43:16~21절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16절)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19절에서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발언하신 문장처럼 들립니다만, 실제로는 이사야라 이름하는 고대 이스라엘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요즘 식으로 바꾸면 이사야의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모든 선지자의 설교가 옳은 건 아니었습니다. 렘 28장에는 예레미야와 하나냐 선지자가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 선지자의 설교 중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검증받은 뒤에 하나님 말씀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 성경으로 채택되었는데, 이사야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이사야는 유대교인만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합니다. 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