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언약궤와 상과 등잔대에 이어 하나님은 성막에 대해 지시하신다. 성막의 골격에 대한 지시(15-30절)를 먼저 읽는 것이 성막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막의 골격은 아카시아 나무(조각목)로 만든, 길이 열 자, 너비 한 자 반 크기의 널빤지를 이어서 만든다.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스무 개의 널빤지를 이어 붙이고, 서쪽과 동쪽에는 여섯 개의 널빤지를 이어 붙여서 만든다. 그렇게 하면 이십 대 육의 직육면체 공간이 만들어진다.
직육면체의 골격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천막을 둘러야 하는데, 그것은 열 폭의 천으로 지어야 한다. 각각의 천은 여러 가지 실로 정교하게 꼬아 만들되, 천 위에는 수를 놓아 그룹(천상계의 존재를 상징하는 가상의 동물) 형상을 새겨야 한다(1-6절). 그 위에 염소 털로 짠, 열한 폭의 천을 덮어야 하고(7-13절),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돌고래 가죽으로 만든 덥개를 이중으로 만들어 씌워야 한다(14절).
성막 내부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휘장(커튼)을 늘어뜨려 구분한다. 휘장의 서쪽 공간을 지성소로, 동쪽 공간을 성소로 구분한다. 휘장은 여러가지 실을 꼬아 만들어야 하고, 그 위에 그룹을 수놓아야 한다(31절). 휘장은 금을 입힌 아카시아 나무 기둥으로 세워야 한다(32절). 지성소에는 증거궤라고도 부르는 언약궤를 두어야 하고, 성소에는 떡상과 등잔대를 두어야 한다(33-37절).

묵상:
이동식 성소였던 성막은 나중에 솔로몬에 의해 붙박이 성소가 되었습니다. 성막의 존재 이유는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25:8)이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광야 유랑 중에 항상 성막을 중심으로 대오를 짰습니다. 성전이 지어진 이후로는 언제 어디서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성막의 눈동자는 언약궤였습니다. 언약궤는 성막 안에서도 지성소에 따로 보관해 두었고,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은 고사하고 제사장들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고 있던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거리를 상징합니다. 시내산 아래에 일반 백성은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있었던 것처럼, 성막에는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절대 거룩의 하나님 앞에 함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경계선은 오직 하나님만 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인간은 그 선을 넘을 수 있습니다. 그 특권은 오직 한 사람 대제사장에게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의 중재를 통해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백성은 중재자인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 하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마 27:5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당신 자신의 생명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제거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장벽이 무너졌고,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인간 중재자는 필요 없습니다.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4:16).
기도:
참된 성전이 되신 주님, 주님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아빠”라고 부르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지성소에 거하게 하시고, 주님과 동행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저희의 존재를 어떻게 변화시켜 주셨는지를 늘 기억하고 살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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