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5. 4. 13. 09:24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

    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 감상

김사인 시인은 1955년 충북 보은에서 났다.

그런 탓일까.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주로 시골 같던 천호동에서 경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깊이 간직하고 사는 나에게 김사인의 시에

소재로 사용되는 내용들은 아주 친숙하다.

우리의 삶은 구름과 같아서 결코 하나로 정지되지 않는다.

이런 모양을 이루다가 흩어져 다시 저런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다시 흩어진다.

그게 어디로 흩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의 결국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구름을 누가 잡겠으며, 그 변화를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무언가를 잡아보려고 애를 쓴다.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걸 결국 알게 되고,

그제야 허전해하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