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와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 감상-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정도의 평상심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종종 나는 생각한다.
목사의 영성이 시인의 영성보다 못하다고 말이다.
‘곤히 잠들고 싶은’ 마음은 곧 안식에 대한 갈망이리라.
자신을 흙으로 낮출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안식이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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