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김사인 시(3)- 유필(遺筆)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5. 4. 12. 07:26

유필(遺筆)

                                   김사인 

 

 

남겨진 글씨들이

고아처럼 쓸쓸하다

 

못 박인 중지마디로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놓고

 

어느 우주로

스스로를 흩었단 말인가

 

겨울밤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

 

 

* 감상

유필은 유서다.

글을 쓴 이는 이미 우주로 흩어져 없으니, 유필이 고아란다.

죽은 시체는 지구에 머물지 우주로 흩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구 안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지구 자체가 우주의 일부이고,

지구도 결국 언젠가 죽어 없어질 테니

모든 죽음은 우주로 흩어지는 거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와 같단다.

그것도 겨울밤에 듣는 거란다.

나도 어릴 때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를 듣기는 했다.

직접 두레박을 우물 깊이 던져보기도 했다.

깊은 우물 속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두레박을 던지고 한참 시간이 지나 철썩 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소리의 낯섦이 바로 유필과 같다는 말인가?

우물 깊이 떨어지는 게 죽음이라는 말인가?

노무현의 유서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