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遺筆)
김사인
남겨진 글씨들이
고아처럼 쓸쓸하다
못 박인 중지마디로
또박또박 이름을 적어놓고
어느 우주로
스스로를 흩었단 말인가
겨울밤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
* 감상
유필은 유서다.
글을 쓴 이는 이미 우주로 흩어져 없으니, 유필이 고아란다.
죽은 시체는 지구에 머물지 우주로 흩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구 안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지구 자체가 우주의 일부이고,
지구도 결국 언젠가 죽어 없어질 테니
모든 죽음은 우주로 흩어지는 거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와 같단다.
그것도 겨울밤에 듣는 거란다.
나도 어릴 때 우물 깊이 떨어지는 두레박소리를 듣기는 했다.
직접 두레박을 우물 깊이 던져보기도 했다.
깊은 우물 속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두레박을 던지고 한참 시간이 지나 철썩 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소리의 낯섦이 바로 유필과 같다는 말인가?
우물 깊이 떨어지는 게 죽음이라는 말인가?
노무현의 유서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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