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상
영정을 고여놓고
떡 고기 전 괴고
조율시이 홍동백서 진설하고
메 올리고 삽시(揷匙)하고 나서
땅 땅 땅 세 번 정저소리 울리고
유세차 축도 읽고
일곱 살짜리 상주
꾸벅 절하고 잔 올리고
미망의 여윈 아내 울먹
절하고 잔 올리고 큰동생 절하고
친구들 하나둘 절하고
막내여동생도 잔 올리고
밖은 어느덧 어둡고
안개비 깔리고
그대 육신 이제 흙 속에서
많이 상했으리
잘 가라 그대
이승의 마지막 밥이니
배불리 들고
술 취해 흔들흔들
잘 가라 그대
* 감상
탈상(脫喪)은 보통 백일이다.
가족에게 상보다 더한 슬픔은 없겠으나
그런 슬픔에 매달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백일로 끝내라는 뜻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망자를 어찌 잊겠는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탈상 의식을 치루고 있는 가족, 친구들도
결국 망자의 길을 곧 따라가야 한다. 어디로?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망자를 향해서 밥이나 배불리 들고
술 취해 흔들흔들 가라고, 그래도 ‘잘’ 가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자신이 가야 할
바로 그 자기의 망자에게 한 말이리라.
우리 기독교인들이야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니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가라고 말할 수 있긴 하다.
여기서 어떤 하늘나라인지,
어떤 환희인지를 잘 분간해야 할 것이다.
흔들흔들 잘 가라는 말과 한편으로는 다르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슷하다.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레킹 / 정용섭 목사 (0) | 2025.04.13 |
---|---|
김사인 시(6)- 치욕의 기억 / 정용섭 목사 (1) | 2025.04.13 |
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 정용섭 목사 (0) | 2025.04.13 |
김사인 시(3)- 유필(遺筆) / 정용섭 목사 (0) | 2025.04.12 |
김사인 시(2) -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 정용섭 목사 (0) | 202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