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텍스트에 충실할 것
어제 ‘새해 달력’이라는 제목의 묵상에서
설교에 충실하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를
네 가지로 말했다.
어디 이 네 가지만이겠나.
기도, 회중들과의 대화, 책읽기 등등,
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최소한의 조건만을 말한 것이다.
이 네 가지를 보충해서 설명해야겠다.
설교자에게 성경 텍스트는
마치 바이올린 연주자의 악보와 같다.
연주자는 악보에 일단 충실해야 한다.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서 악보를 무시하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해서 악보를 기계적으로 재생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컴퓨터가 더 잘한다.
훌륭한 연주자는 악보에 복종하되 자유롭다.
거꾸로 자유롭되 복종한다.
복종과 자유의 긴장을 팽팽히 유지해야만
그의 연주는 창조적인 차원으로 들어간다.
성경 텍스트에 충실하다는 것은
거기에 문자적으로 매달린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 문자가 지시하는 어떤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야 한다.
대개의 설교자는 문자가 지시하는,
또는 문자 너머에 있는 어떤 세계를 모른다.
그런 사태 자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설교는 가능하다.
청중들은 더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모른다는 뜻이다.
단순히 낱말만 남아 있고
낱말 너머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과도한 수사학에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웃기고, 울리고, 감동 먹게 하고...
설교 행위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텍스트(근본)에 충실해야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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