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존할 것
신앙생활에서 성령에 의존한다는 말보다
더 오해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저 말이 자칫 독선을 합리화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 경향이 없지 않다.
음악적 영감(inspiration)에 사로잡힌 작곡가처럼
일상과는 다른 소리를 들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교회에서도 성령 운동(?) 하는 분들은
짐짓 신령한 태도를 취한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홀리보이스(holy voice)로 바뀐다.
기도를 많이 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성령에 취했는지 악령에 취했는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거기서 나타나는 현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각각 나타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악령으로도 병을 고친다.
마지막 때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그런 능력을 보인다고 복음서가 밝히고 있다.
이미 초기 기독교 당시에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성령에 의존한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성령이 누구냐, 또는 무엇이냐를 물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그걸 다시 말하지 않겠다.
그것을 주제로 한 책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성령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기에
종말이 오기 전에는 다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서는 짧게나마
성령에 의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겠다.
이것은 성령에 대한 여러 이해 중에서 한 가지다.
성령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무게를 미래에 둔다.
성령은 곧 종말의 영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단순하게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그 깊이로 들어가거나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현재를 초월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지금의 모든 것은 결국 미래의 힘에 굴복당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에게 미래는 부활이다.
만약 그 사실을 막연하게 받아들이기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깨닫고 동의하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당연히 현재를 초월할 것이다.
이런 성령 의존성이 설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위의 설명과 직접 연관이 없을지 모르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정리하겠다.
내가 성령에 더 의존적인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치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은혜는 내 소관이 아니라 진리의 영인 성령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혜는 설교 듣는 그 순간에 당장 일어나는 게 아니라
훗날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에 의존하는 설교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설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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