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카피라이터 정철의 내 머리 사용법중 ‘남 좋은 일’을 하나님께 드리며 ‘남 좋은 일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남 좋은 일. 남 씨 성을 가진 한 젊은 친구의 이름이다. 내가 지금껏 들어본 이름 중 가장 신선한 이름이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의 부모는 왜 남 좋은 일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을까. 남을 이겨라나 남보다 먼저가 아니라,왜 손해 보며 살아가라고 이름을 붙여 줬을까.”
‘남 좋은 일’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의 이름을 돌아보지 않을 수없습니다.
크게 보면 우리의 이름은 두 가지 일 경우가 많습니다.
‘나만 좋은 일’ ‘내 가족만 좋은 일’
구약에‘기업 무를 자’가 나옵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고엘’로서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 및 혈족을 보존하고,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하는 사람입니다.
고엘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룻기서를 보면 홀로된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 1순위가 등장합니다.
그는 보아스의 설명을 듣고서 “내가 무르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곧 생각을 바꿔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못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그는 나오미의 남편이 죽었기에 이제 나이 든 나오미마저 죽으면
모든 소유가 자기의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방 모압 여인 룻을 책임져야 했고,
룻에게 자식이라도 생긴다면 엄청 손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손해 보며 ‘남 좋은 일’은 죽어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복을 걷어 찹니다.
룻을 통하여 주어질 복의 원천을 전부 보아스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그런데 너무나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름입니다.
그의 이름은 ‘아무개’였습니다.
시쳇말로 ‘거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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