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동절이었다.
대다수의 직장이 문을 닫은 것 같다.
이렇게 하루 쉰다고 해서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잠시 유예될 뿐이다.
노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노동 없이 인간 삶은 유지될 수도 없다.
인간의 얼굴을 한 노동이 필요할 뿐이다.
어떤 것이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한 노동인가?
자기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것만큼 받아가는 세상에 대한
마르크스의 꿈을 공산주의가 실현해보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 역시
노동 해방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나은 것이 북 유럽의 복지 체제인데,
거기에 도달하는 것도 요원하거니와 도달했다고 해서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ora et labora’(기도하고 노동하라.)는 수도원의 영적 슬로건이다.
기도하면서 노동하고, 노동하면서 기도한다.
기도가 곧 노동이고 노동이 곧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기도는 기도이고, 노동은 노동이다.
오늘의 노동 문제는 결국 ‘기도’가 빠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일 없이 노동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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