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소박한 시작, 놀라운 미래 (막 4:30-34)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1. 25. 22:31

해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30절) 하고 물으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시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물질과 육신에 갇혀 있고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땅한 비유를 찾으신다.

 

예수님은 겨자씨를 소재로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신다.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 더 작다”(31절)는 말은 “세상에 있는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다”는 뜻이 아니다.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씨앗들 중에 가장 작다는 뜻이다. 겨자풀은 보통 2미터까지 자란다. 풀이라기 보다는 나무다. “공중의 새들”(32절)은 이방 사람들을 가리킨다. 지금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지극히 미미해 보이지만, 후에는 세상 모든 민족에게 그 은혜가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비유는 에스겔이 전한 “백향목의 비유”(겔 17:22-24)를 생각나게 한다. 주 하나님께서 백향목 가지 끝에 있는 연한 순을 꺾어 시온 산에 심으실 터인데, 그 연한 순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온갖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게 될 것이라는 비유다. 예수님은 겨자씨에 대해 말씀하면서 이 비유를 생각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겨자씨의 비유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분은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 심으신 분이다.   

 

33절과 34절은 마가의 설명이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34절)는 말은 반어법적 강조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께서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다는 뜻이다. 무리에게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고 말씀하시고는, 제자들과 따로 계실 때에는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묵상: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 종교가 되고 온갖 민족들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겨자씨의 비유를 읽습니다. 겨자씨는 약한 입바람으로도 날아갈 정도로 작은 것이지만 나중에는 큰 나무처럼 자라고 온갖 새들이 깃든다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정말 그렇게 되었군!”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을 처음 읽었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면 달라집니다. 그들이 이 복음서를 처음 읽었을 때 기독교는 메마른 씨앗 한 톨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수 많은 종교와 철학이 경쟁하는 로마 제국 내에서 예수의 복음은 듣도 보도 못한 신생 종교 운동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이 겨자씨의 비유를 읽었을 때 무엇을 상상했을까요? 그 때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금은 겨자씨처럼 가망 없어 보이지만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가 올 것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다면, 곧이 듣는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겨자씨의 비유가 달라 보입니다. 이 짧은 비유는 엄청난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곤 합니다. 우리 생각에 불가능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려고 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우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활짝 열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이 하시는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또한 신비롭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고 예상을 비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주님을 제한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중에서 행하시는 일에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의 신비를 누리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