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새번역 사도신조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한다. 독어 사도신경은 이 대목을 “die heilige christliche Kirche”로, 영어 사도긴경은 “the holy universal church”로, 니키아-콘스탄티노플 사도신경은 ‘사도적’이라는 낱말을 보충해서“ecclesia una sancta, catholica et apostolica”이라고 한다.
교회의 보편성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용어는 아니다. 그런 개념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110년 경 순교당한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Ignatius von Antiochien)는 아래와 같이 교회 보편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이다.
감독이나 혹은 그가 지명한 사람에 의해서 집행되는 모든 성만찬은 정당하다. 감독이 어디에 있든지 회중은 거기에 참석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시든지 그곳에는 보편적인 교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몰트만,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370 쪽에서 재인용).
성경에 없는 용어라고 해서 의미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독교 교리는 역사에서 형성되었다. 보편성도 그렇다.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던 초기 기독교는 감독 체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그나티우스에 의해서 기독론과 교회론이 결합해서 보편성 개념이 나온 셈이다. 우리는 그런 역사적 교리를 오늘 이 시대에 맞도록 재해석하기 위해서라도 초기 기독교의 전통적 교리를 먼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교회의 세 가지 표지 중의 하나는 보편성이다. 보편성을 잃은 교회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오늘 한국교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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