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금식의 이유 (이사야서 58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2. 5. 06:30

해설: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이중성을 책망하신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유다 백성의 죄에 대해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신다(1절).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기를 즐긴다(2절). 그들은 금식과 여러 가지 고행을 즐겨 행한다. 하지만 금식을 행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향락을 즐겼고 일꾼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시켰다(3절). 서로 소송을 하고 다투면서도 금식일은 성실하게 지켰다(4절). 주님께서는 그들이 금식의 의미를 망각하고 형식만 지키고 있다고 책망하신다. 그런 금식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5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 주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6-7절).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진실하게 “통회하며 괴로워”(5절) 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게 된다. 진정한 금식은 공의를 행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렇게 금식하며 그 의미를 실천할 때, 주님께서는 그를 돌보아 주실 것이고 빛나게 해주실 것이다(8-11절). 그들은 또한 폐허가 된 성읍들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12절).

 

13절과 14절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말씀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정기적인 휴식을 보장하려는 뜻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안식일의 본래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를 고백하고 선포하고 축하는 데 있다.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 자신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축하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생계를 위한 모든 일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자구책을 멈추고 내가 오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고 축하한다. 그렇게 할 때 “주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14절). 

 

묵상:

영적 생활을 신실하게 지속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영적 생활과 일상 생활이 분리되지 않아야 합니다. 일상 생활의 방향과 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영적 생활은 무익하거나 해롭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생활은 부정한 일상 생활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거나 영적 도피처가 됩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도피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 영적 황홀경을 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분의 눈과 마음으로 일상 생활을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사에 묶여 있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나 이웃을 돌아보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유다 백성의 형식화 된 영적 생활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열심으로 금식일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금식 행위는 그들의 일상 생활과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상 생활에서 지은 죄책감을 가리는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심해질수록 금식 행위는 더 떠들썩 해졌습니다. 금식을 지키는 그들의 태도는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바울 사도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것을 경고했는데, 유다 백성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약 1:27)라고 했을 때, 그는 이사야를 통해 주신 이 예언의 말씀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그 능력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세우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