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사람 창조(6)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10. 5. 05:02

    사람의 먹을거리를 하나님이 허락하셨소. 그런데 그 문장을 정확히 보시오. 채소와 나무 열매를 주셨소. 짐승과 물고기를 주셨다는 말은 없소.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채식동물로 창조하셨다는 뜻이오? 여기 본문으로 채식주의 운운하는 것은 너무 진도가 빨리 나가는 것이긴 하오. 성서기자가 그걸 의도했다고 확신할 수도 없소. 성서가 기록되던 시기의 유대인들은 당연히 육식을 했소. 양, 소, 염소를, 그리고 각종 물고기도 먹었소. 유대인들은 먹을거리에 대해서 유난히 민감했던 민족이오. 짐승 중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확실하게 구별했소. 예컨대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만 먹을 수 있었소. 유대인들은 원래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에 육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런데 창세기 기자는 먹을거리 목록에 육식을 포함시키지 않았소.

 

     내 생각에는 성서기자들도 육식이 그렇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소. 그럴 수밖에 없소. 각종 짐승을 보시오. 다 사람과 비슷한 방식의 생명체들이오. 유대인들이 즐겨 먹던 양만 하더라도 그렇소. 사람과 똑같이 허파로 숨을 쉬고, 심장으로 혈액 운동을 하오. 그리고 뇌 활동을 하오. 생명 메커니즘의 기본 구조는 사람과 똑같소. 유대인들이 양과 소를 제물로 드린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소. 짐승을 잡는 것은 일종의 종교의식과 같소.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도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을 끊는 행위를 어찌 종교의식으로 승화시키지 않을 수 있겠소. 요즘도 몽고 등의 유목민들은 자기들이 키우던 양을 잡을 때 특별한 의식을 행한다고 하오. 사냥을 할 때도 마찬가지요.

 

     지금 나는 채식주의가 무조건 옳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오. 사람의 조상인 유인원 시대부터 사람은 동물들과 생존 투쟁을 거치면서 육식을 했소. 에스키모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하오. 아마존의 원시림에 사는 원주민들도 육식이 반드시 필요하오. 그런 특별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생존하려면 육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문제는 사람의 입맛이 육식에 너무 깊숙이 길들여진다는 것이오. 소고기를 즐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곡식이 사료로 사용되는지 그대도 알고 있소. 이제 소, 닭은 생명이 있는 동물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처럼 다루어지고 있소. 이것이 인류의 먼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한지는 정말 진지하게 성찰되어야만 하오. 천국에서는, 거기에도 먹는 행위가 있다면, 아마 창세기 기자가 묘사하듯이 채소와 각종 열매만을 먹을지 모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