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사람 창조(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10. 5. 04:58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오해되었소. 지배 개념이 바로 그것이오. 사람은 세상을 지배할 권한이, 또는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생각했소. 그것도 나름으로 일리가 있소. 모든 동물과 곤충을 비롯한 자연은 거칠어 보이오.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허물어질 것처럼 보이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대로 자연을 지배하려고 했소. 그 자연지배가 우리의 삶을 부분적으로 편리하게 하긴 했으나 생태가 균형을 잃는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소. 일본 핵발전소 사고에서 보듯이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소. 어느 순간에 지구는 그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할지 모르겠소. 인간에 의해서 말이오.

 

     자연에 대한 지배가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적 지배로 발전했소. 그리스도교가 주로 서구문명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서양 문명이 그 이외의 문명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오. 에드워드 사이드가 1978년에 쓴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 그 개념이 널리 알려졌소. 서구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점으로 중동과 동양을 대상화 하오. 자신들이 중심이오. 그들은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소. 동양에도 그런 흔적이 많소. 일본은 서구를 대신해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소. 일본은 동양에 있으면서도 서구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소.

 

     이제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새롭게 이해되어야 하오. 그것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라고 말이오. 섬긴다는 말은 낭만적인 차원이 아니오. 세상의 생명체로 각자 자기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이오. 오해는 마시오. 우리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아니오. 모든 생명체들은 이미 창조 당시에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소. 우리는 그 능력이 축소되지 않도록 도울 뿐이오. 그런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여기서 말하기 어렵소.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오. 생각해보시오. 우리가 악어와 얼룩말이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겠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그냥 내버려두는 게 최선이오.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필요한 경계선에서 적절하게 행동할 것이오. 이렇게 말을 하다 보니 사람이 이 세상을 섬길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소.

 

     이 문제는 E 기자가 전하는 창조 설화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는 게 좋겠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동물을 만드신 뒤에 아담이 그 이름을 짓도록 하셨소.(창 2:19)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바로 그 이름이 되었다 하오. 사람의 역할은 곧 생물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소. 대단한 일이오. 이름은 그것의 정체성을 규정하오. 어제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을 말했소. 그것이 바로 핵심이오. 사람만이 모든 생물을 존재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을 능력이 있소. 그것이 바로 사람이 세상을 섬기는 것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