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재홍목사

고쳐 쓰시는 하나님 (눅 15:1~7) / 김재홍목사

새벽지기1 2024. 9. 11. 07:06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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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창조절 첫 주일입니다. 창조절은 9월 첫 주일부터 대림절 전까지입니다. 창조절기는 초교파적으로 지키는 절기로 창조세계에 대한 기독교인의 책임을 자각하고 창조질서를 지키기 위한 실천에 힘쓰는 절기입니다.

망가지고 고장 난 우리


2024년 6월 우리나라 기상청은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89.9%의 국민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기후위기 중에 어떤 피해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3.8%의 국민이 폭염이라고 답했습니다. 많은 국민이 답한 바와 같이 올 여름 폭염은 대단했습니다. 서울 기준으로 열대야가 무려 34일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2018년의 26일 기록을 8일이나 넘어선 기록이었습니다. 처서가 되면 시원해지는 처서 매직도 없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조금 선선해진 것은 처서가 일주일정도 지난 다음부터였습니다. 절기가 뒤로 늦추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 누가 그러더군요. “이번 여름이 제일 시원한 여름이다. 앞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여름 중에서.” 기후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내년 여름이 걱정입니다.

2020년 19명의 청소년들이 헌법재판소에 기후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후 몇몇 시민단체와 어린이, 아기들까지 기후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정부의 환경정책이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 미흡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문제제기였습니다. 지난 목요일인 29일에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을 내놓았습니다. 정부의 환경정책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다는 판결이었습니다. 헌재는 정부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35% 이상 감축한다는 계획만 제시했을 뿐 205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이는 미래세대에게 과중한 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쾌적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인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제 정부는 헌재의 판결에 부합한 새로운 환경정책을 만들고 실행해야 합니다. 부디 온실가스를 줄여 망가지고 있는 기후와 병들어가고 있는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길 소망합니다.

최재천 생물학 박사는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우리가 깊이 새겨 들을 만한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대유행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많았다. 20세기만 봐도 스페인독감, 홍콩독감, 콜레라 등이 20년 주기로 발생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염병의 대유행 주기가 2,3년으로 줄어들었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신종플루, 코로나... 왜 그럴까? 기후변화와 동물들의 서식지 변화 때문이다. 온대지방의 기온이 올라가니까 열대에 살던 동물들이 온대까지 서식지를 넓혔다. 지구 표면적 중 인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1만년 전만 해도 인간이 차지한 지표면은 1%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96%가 넘는다.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가축이 다 점령했다. 그러니 인간 밖 세상에서 살던 짐승들 속에 있던 바이러스들이 인간들과 인간들이 기르는 가축에게 찾아올 수밖에 없는 거다.’ 최재천 박사는 이런 잘못된 흐름을 끊기 위해서는 인간이 개과천선해야 한다고, 백신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연보호라는 생태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후가 망가진 것인 인간이 망가졌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망가진 인간이 개과천선해야 망가진 기후가 회복됩니다. 개과改過, 잘못된 것을 고치고, 천선遷善, 선한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살 생각만 하지 말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고쳐 쓰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목수셨습니다. 목수는 나무를 이용해 집도 만들고 가구도 만드는 사람입니다. 목수는 없는 것을 새로 만들기도 하지만, 망가진 것을 고치기도 합니다. 뒤틀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고치기도 하고, 내려앉은 책꽂이를 반듯하게 고치기도 합니다. 목수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기에 나무에 대해 잘 압니다. 가벼워서 가구 만들기에 좋은 나무, 단단하고 잘 변질되지 않아 배를 만들기에 좋은 나무, 하중을 잘 견뎌 집을 만들기에 좋은 나무 등. 목수는 나무의 성질에 맞게 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목수는 나무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나무를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한옥을 허물게 되어도 그 집을 구성하고 있던 나무를 다 버리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면 다 버려도 될 것 같은데 목수 눈에는 그게 다 쓸 만한 귀한 나무로 보이기에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둡니다. 모아두었다가 그 나무의 성질에 맞게 쓸 곳이 생기면 다시 잘 다듬어 그 나무에 새로운 쓰임과 생명을 부여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그런 목수의 특성이 예수님에게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혀 버려진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버려진 이들 곁에 다가가 그들을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이라고 재호명해 주셨습니다. 세리, 창기, 병자, 가난한 자, 이방인. 예수님 눈에는 그들도 다른 이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세 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목자, 드라크마 하나를 잃어버린 여인, 아들을 잃었다가 되찾은 아버지 이야기. 세 가지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요소는, 잃어버린 것을 귀히 여김, 잃어버린 것을 되찾음, 되찾은 것을 함께 기뻐함 입니다. 누가 15장은 우리에게 세 번이나 반복 권면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이들을 귀히 여겨 그들을 되찾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함께 기뻐하자’고. 그것이 누가복음 15장의 주제입니다. 아니 그것은 예수님 사역의 궁극적 목표였습니다.

복음서에 ‘잃어버린 사람들’만큼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버렸습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틀 안에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을 가두었습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에 부합한 사람들만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겼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낙인찍어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을 유대 공동체 밖으로 버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쉽게 사람을 버리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대로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을 자기가 만든 틀에 가두지 말라고, 자기만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지 말라고, 모두가 귀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너와 다르고 혹 네가 세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을 버리지 말라고, 사람이 사람을 버리지 않을 때 모두가 삶을 기쁨으로 느끼며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3. 고쳐 쓰시는 하나님


길을 가다보면 버려진 자전거들이 많이 보입니다. 지자체들은 방치된 자전거에 ‘언제 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수거해 간다’는 스티커를 붙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수거해 가서 폐기하거나 깨끗하게 수리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도 합니다. 몇몇 교우들은 알겠지만 저는 대나무로 자전거 프레임을 만들어 탑니다. 자전거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조 과정 중 많은 환경오염이 일어나고 쉽게 버려진 자전거들 또한 적지 않은 오염을 일으킵니다. 자전거를 만든 사람의 눈으로 보면 버려야 할 자전거는 없습니다. 버려진 자전거들 대부분은 두세 곳만 손보면 다시 탈 수 있는 자전거들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려야할 인간은 없습니다. 단지 두세 곳 치유하거나 돌보아야 할 곳이 있는 인간이 있을 뿐입니다.

창세기 속에는 창조하시는 하나님보다 훨씬 많이 등장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고쳐 쓰시는 하나님’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지상낙원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과 하와에 의해 망가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동산을 망가뜨린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쪽에서 살게 하셨지 그들을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생을 죽인 가인도 버리지 않으시고 그가 놋 땅에 가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찬 것을 보시고 노아라는 사람을 택해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시작, 새로운 아담이었던 노아는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노아도 버리지 않으시고 노아를 통해서도 당신의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내를 팔아 목숨을 연명했고, 야곱은 가족을 속여 복을 얻으려 했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동생 요셉을 팔아먹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고쳐 쓰셨으며, 항상 그들과 함께 역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일본 교토대 공학과 교수였던 스찌다 다카시 박사는 자신의 아들이 아토피에 걸려 쉽게 낫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현대문명의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깊은 생각 끝에 현대문명은 지나친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하는 문명이 되었다는 인식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이후 공학자의 길을 버리고 생명 살림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유기농사를 짓고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는 생협을 세웠습니다. 그가 세운 생협의 이름은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입니다. 사실 이 모임 이름에는 생략된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쉽게’이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물건, 자연, 사람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시대입니다. 물건이며 자연이며 사람이며 쉽게 쓰고 쉽게 버리면서도 우리 마음속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쉽게 쓰고 쉽게 버리면 어쩌지. 그 두려움을 늘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뭐든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행태는 고치지 않습니다. 죄입니다. 뭔가를 훔치고 사기를 치고 법을 어기는 것만 죄가 아니라 귀히 여겨야 할 것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게 죄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않고 고쳐 쓰시는 주님이 우리의 희망이며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그 주님 앞에 나아가 고장 나고 망가진 우리의 모습을 고하고 고침을 받읍시다. 물건과 자연과 사람을 쉽게 쓰고 버렸던 모습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 모든 것을 귀히 여기며 살아갑시다. 그런 태도야말로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개과천선이며 생태백신이 될 것입니다. 그 귀한 일을 함께 기쁨으로 감당하는 청파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