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라 하오. 그대는 장애가 있소? 장애는 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오. 마음에도 장애가 많소. 사실은 몸의 장애보다는 마음의 장애가 더 심각하오. 사람들은 마음의 장애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소. 마음의 장애는 확 드러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소. 또는 몸의 장애는 고치기 힘든 반면에 마음의 장애는 노력만 하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소. 착각이오. 마음의 장애도 고치기가 힘드오. 몸의 장애는 자기가 불편하지만 마음의 장애는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크게 불편하게 하오. 그런 점에서 마음의 장애가 더 심각한 것 아니겠소.
마음의 장애도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소. 인격 자체가 훼손된 사람도 있고, 심리와 정서가 불안한 사람도 있소. 우리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는 신앙의 장애가 큰 문제라 할 수 있소. 신앙의 장애라는 말 자체가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겠소. 신앙은 마음의 장애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니 말이오. 그래야 마땅하지만 실제로는 신앙이 사람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다오. 복음서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런 사람의 전형이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를 삐딱하게 보았소. 예수님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은 거요. 자신들이 절대적인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을 예수님이 상대화했으니 그럴 만도 하오.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지도자들의 인격은 괜찮았소. 경건 생활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었소. 지금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을 머리에 그려보면 될 거요. 새벽기도회, 주일성수, 십일조 헌금, 각종 봉사 모임 등에 철저한 사람들이었소. 그런 모든 종교적 열정이 사실은 자기를 강화하는 거였소. 그런 열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영혼의 장애는 심각해지는 거요. 본인은 그걸 모른다오. 이게 불행이오. 자신들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와 충돌한다는 사실이 말이오.
예수님 당시에 첨예했던 안식일 논쟁을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거요. 지금의 주일이나 십일조로 생각하면 되오. 예수님은 안식일에 환자를 돌봐주셨소. 바리새인들에게는 그게 바로 안식일을 범한 거요. 율법을 범한 거였소. 율법을 범한 사람은 그에 해당되는 징벌을 받아야만 했소. 앞에서 짚었듯이 당시 바리새인들이 신앙이 없어서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과 논쟁을 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오. 신앙심만으로 본다면 그들은 부끄러울 게 하나도 없소이다. 그래도 결국 그들은 장애를 입은 사람이오.
오늘 이야기가 주제에서 크게 벗어났소.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말이 나왔다 하면 늘 신앙 문제로 돌아가니, 이것도 장애가 아닌지 모르겠소. 나를 측은히 여겨 주시구려. 내일 다시 말할 기회를 주시오. (2010년 4월20일, 화요일, 완연한 봄의 느낌을 받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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