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50주년
오늘이 4.19 혁명 50주년이라는 사실을 그대도 알고 있을 거요. 그 혁명의 특징은 학생들이 주체였다는 거요. 시작은 고등학생들이었고, 그 뒤를 이어 대학생들이 나섰고, 경찰의 발포로 학생들이 죽어가자 대학교 교수들도 나섰소. 결국 이승만 정권은 물러났소. 4.19 혁명으로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젊은 장교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권력을 찬탈하였소. 이를 5.16 군사정변이라 하오. 4.19가 일어난 다음 해인 1961년의 일이오. 4.19 혁명이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체제를 확고하게 세우는 데는 실패한 거요.
나에게는 4.19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별로 없소. 그때 나는 7살이었으니 어쩌겠소. 초등학교에 들어갔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소. 아마 들어갔을 거요. 한 가지 기억만 어렴풋이 나오. 나보다 열 서너 살(정확하게는 모름) 많은 형이 옷에 피를 많이 묻혀서 집에 돌아온 것을 보았소. 그때 형님이 대학생은 아니었소. 막노동을 했소. 돈암동 쯤 어딘가에 일하러갔다 돌아오는 길에 데모 군중에 휩쓸린 것 같소. 경찰의 발포로 군중들이 납작 엎드렸소. 서로 살기 위해서 가능하면 사람 밑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거요. 형님 위에 있는 엎드려 있던 청년이 총에 맞았나 보오. 그 피를 그대로 받았을 거요. 형님의 옷에 피가 얼마나 묻었는지는 기억에 없소.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을 그날 밤에 들은 것만 기억하오.
지금 대한민국은 이런 혁명의 시절은 지났소. 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소.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역사인지는 끊어서 말하기 어렵소. 가능하면 피의 혁명은 없어야 할 거요. 그 와중에 삶을 파괴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오. 그러나 변화를 향한 열망마저 없다면, 그것 또한 허무한 일이오. 오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보수적이라 하오. 오직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악한 질서와 아주 쉽게 타협할 줄 아는 거요. 소위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입장을 이해 못할 것도 없소. 그들의 꿈을 사회가 용납하지 않소. 그런 세월이 길어지면서 꿈꾸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 거요. 그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한국교회의 그것과 똑같소. (2010년 4월19일, 월요일, 혁명을 망각한 세월 속에서 4.19 혁명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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