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장애의 사회적 책임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23. 04:08

     그대도 아마 잘 알고 있을 거요. 우리나라에는 1990년 1월13일에 제정된 “장애인 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있소. 이 제도는 꾸준히 확대되어 왔소. 다행이오. 예컨대 50인 이상의 상주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는 대략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법률이오. 이걸 그대로 지키는 사업주는 별로 없을 거요. 차라리 벌금을 물고 말겠다는 기업주도 많소. 은행이나 백화점 등, 서비스 업계에서 활동하는 장애인을 만나기 힘든 이유도 이런 관행에 있는 게 아닐까 하오. 이런 문제가 어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주들에게만 있겠소. 우리 모두의 문제라오. 장애인 시설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 시위하는 풍경은 그렇게 낯설지 않소.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는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는 모르오. 나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입장은 아니오. 단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오. 평소에는 늘 내 일에만 매달려 있다가 외부 환경이 그걸 압박할 때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모습이 우스워 보이지만, 그게 내 주제이니 어쩌겠소.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그대에게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고치자고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오. 교회가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설교하고 싶은 생각도 없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런 차별이 없는 유럽의 복지정책을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도 않소. 그런 계몽과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장애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제거하기는 어려울 거요. 그런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오. 가능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장애 문제를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교육과 사회 시스템이 필요한 건 분명하오. 그런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해나가면서 더 근본적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오. 사람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장애인의 길을 가고 있소. 늙음은 바로 장애인의 길이오. 어느 순간에 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냄새로 맡을 수 없게 되오.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와도 느낄 수가 없을 거요. 죽음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될 순간이 오는 거요. 아무도 이 길을 피할 수 없소. 지금 장애를 안고 있는 분들은 그 길을 미리 당겨서 살고 있는 거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는 장애인들이라오.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오. 개인과 사회는 더불어서 장애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준비해야만 하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그대가 깊이 생각해보시오. 죽음을 앞당겨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삶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삶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바로 그 출발이오. 장애와 비장애가 인류의 실존에서 다른 게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실천해 나가는 수밖에 다른 길이 우리에게 없소.(2010년 4월21일, 수요일, 흐리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