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눈 감고 쌀을 씻으며....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23. 04:12

     그대도 밥을 해 봤으니 알겠지만, 밥을 하려면 먼저 쌀을 씻어야 하오. 씻지 않고 그냥 밥을 할 수 있도록 가공된 쌀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소. 바람으로 먼지를 다 털어낼 수는 없는 일이고, 물로 씻었다가 다시 말린다면 쌀의 질에 문제가 생길 거요. 그대는 밥을 할 때 물로 몇 번이나 씻소? 나는 세 번이오. 물을 세 번 간다는 말이오. 쌀을 어떤 방식으로 씻소? 나는 두 가지 방법이오. 하나는 거품 주걱을 사용하는 거요. 손잡이에 전구 모양의 철사 줄이 달린 것 말이오. 그것의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소. 그것으로 쌀을 휘젓소. 다른 하나는 손이오. 겨울철에는 손이 시린 탓에 주로 거품 주걱을 사용하지만 봄이 되면서부터는 손으로 씻을 때가 많소.

 

     그대도 손맛이라는 걸 알 거요. 음식 맛을 낼 때도 맨손으로 해야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 하오. 요즘이야 전업주부들도 비닐장갑 낀 손으로 콩나물이나 시금치를 무치는 것 같소.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워낙 베테랑이니 맛이 어디 가겠소만, 맨손만은 못할 거요. 전문 요리사들은 모두 맨손으로 한다는데, 다 이유가 있소. 말이 좀 옆으로 나갔소이다. 쌀을 씻는 손맛이 좋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소. 쌀독에 든 쌀을 손으로 만지는 맛도 대단하지만, 물로 씻을 때의 맛은 또 다르오. 일단 물속의 쌀을 손으로 쥐어보시오. 그리고 바가지 바닥에 대고 비벼보시오. 손바닥의 신경을 통해서 전해오는 그 촉감은 어떤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오. 내 표현력이 없어 그 맛을 다 전할 수 없구려. 그런데 말이오. 나는 손맛을 더 느끼기 위해서 가끔 눈을 감고 쌀을 씻소. 눈을 감아야만 촉감이 더 예민하게 살아난다는 것을 그대로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거요.

 

     눈이라는 게 무언지! 눈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한 둘이 아니지만 눈으로 인해서 우리가 또 잃어버리는 게 한 둘이 아니라오. 눈은 사물의 본질보다는 외형에 빠지게 한다오. 이브와 아담이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취했을 때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눈이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창 3:6) 선악과의 기능은 눈이 밝아지는 것이었소. 그게 원죄의 본질이라오.

 

     나는 가끔 인간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고 한다면 어떤 세상일까 하는 상상을 하오. 모두에게 시각 능력이 없다면 그것을 장애라고 말할 필요도 없겠구려. 이 세상에는 시각이 없는 생명체가 제법 되오. 박쥐나 돌고래는 특유의 초음파로 대상을 식별하고 지렁이는 촉감으로만 하오. 그래도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소. 우리에게 시각이 없다면 문명을 일구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더 충만하게 느끼면서 살았을지 모르오. 그대도 가끔 눈을 감고 쌀을 씻어보시구려. 분명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거요. (2010년 4월22일, 목요일, 비, 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