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오래된 미래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3. 06:58

그대는 아마 위 제목을 들어보셨을 거요. 안 들어봤어도 괜찮소. 이제 내가 조금 소개할 터이니 듣기만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오. 사실은 책 제목이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라는 스웨덴 출신 여성학자가 16년간에 걸쳐 티베트의 라다크를 체험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오. 그녀가 1975년에 라다크를 처음 방문했다는데, 런던 대학교 동양 언어학과의 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오. 잠시 탐방하려다가 아예 눌러 않은 셈이지.

 

달라이 라마가 서문을 썼소. 서문을 적은 날짜를 보니 1991년 2월26일이오.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1쇄가 나온 날짜는 1996년 9월1일이고, 제4쇄가 나온 날짜는 1997년 1월27일이오. 간지 여백에 내가 서명을 해두었소. 1997년 2월5일이오. 당시 이 책을 읽고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처럼 느꼈다오. 그런데 벌써 13년 전이라니, 시간이 참으로 놀랍지 않소?

 

헬레나가 전해주는 라다크 사람들의 삶은 수백 년 전, 아니 수천 년 전의 그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는 거요. 야크와 암소의 교배종인 ‘조’라는 가축으로 농사를 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오. 사유재산이라는 개념도 없소. 싸움이라는 것도 모른다오. 이웃 사이에 다툼이 문제가 생기면 아무나 중재를 하고 당사자들은 그대로 따른다는 거요. 때로는 아이들이 중재를 하기도 한다는군. 헬레나의 책이 나올 즈음부터 관광객들이 라다크를 드나들게 되고, 유럽 자본이 들어오면서 ‘라다크 프로젝트’를 펼친다고 하오. 우리의 농촌이 개발되는 모습과 비슷한 거요. 헬레나는 그걸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소. 그래도 최대한 라다크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 여러 국제단체와 네크워크를 꾸리고 있는 것 같소이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니 지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내 잘 모르겠소. 더 긴 내용을 말하지 않으리다. 궁금하면 책을 보시구료. 녹색평론사에서 나왔소. 이번 설에 이 책 한권을 읽는다면 아마 가슴이 뿌듯할 거요.

 

라다크의 오래된 삶의 전통이 인류의 미래라는 헬레나의 주장을 낭만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소. 우리 모두 농촌으로 들어가서 전원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도 아니오.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오. 이미 인류는 문명의 단맛을 알기에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거요. 그런 전원의 삶이라고 해서 무조건 평화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거요. 라다크는 아마 특별한 조건이 갖추어졌기에 그런 것이 가능했을 거요. 그 조건이 무엇인지도 책을 보면 알게 될 거요.

 

이 책을 다시 기억하면서 그대에게 속삭이고 싶은 말은 ‘물(物)의 영성’이오. 라다크 사람들의 삶은 물이 중심이었소. 물과 친근하다는 거요. 물, 바람, 흙, 돌, 위에서 말한 ‘조’, 풀 등등, 모든 사물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거요. 이런 물의 영성은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을 거요. 아니, 모든 고대인들은 그렇게 살았소. 이런 걸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오. 갓난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사물과 영적으로 소통한다오. 심지어 자기 똥으로도 놀이를 하잖소. 그렇군. 삶은 놀이라오. 그대여, 온 천지가 놀이터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