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3. 06:54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이 질문은 사람이 사유(思惟)하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된 것이오. 너무 진부한 질문처럼 들릴지 모르겠소. 아니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우리에게는 없소이다. 이런 질문을 그치는 날,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거요.

 

그런 질문은 배부른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요. 그런 사람과는 뭐,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소. 사람이 배불리 먹으려고 사는 거는 아니지 않소. 조금 덜 먹을 생각만하면 먹는 문제로 우리 삶이 소진되지 않아도 좋을 거요. 더구나 배고플 때부터 이런 질문을 할 줄 알아야 어느 정도 배고픔을 해결한 뒤에도 이런 질문을 계속할 수 있는 법이라오.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대학공부하고, 자식들 키우고 취미생활하고 교회에 다니느라, 세상살이에 너무 바빠서 이런 질문을 할 겨를이 없다고 말하지는 마시오.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결국은 곧 끝장나고 말거요. 그것이 해결되든 않든 상관없이 어떤 형태로든지 끝나고 말거요. 내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봐도 그건 너무나 분명하오. 내 열정, 좌절, 연민으로 뒤범벅이 된 모든 것들이, 또는 사랑, 희망, 연대로 탄탄하게 묶인 삶의 알맹이들도 다 지나가버렸소. 그런 것들만 끝까지 붙들고 살 수는 없는 거요.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거요? 잠시 멈춰서 간단하게나마 내게 설명해주시오. 그런 건 아무리 물어도 알 수 없으니 그런 문제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는 마시오. 그런 질문이 귀찮게 느껴질수록 우리의 삶은 허무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만다오.

 

그대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요? 너무나 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보오.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정답을 말하려는가 보오. 그 하나님이 누구요? 그 하나님이 무(無)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시오? 하나님은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오. 무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근원이오. 물론 우리도 무로부터 창조되었소. 무로부터 온 거요.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무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것은 아니오. 창조 이전은 무였으나 종말 이후는 무가 아니라오. 무가 아닌 것까지는 말할 수 있으나, 그 다음은 말할 수 없구료. 가 봐야, 더 정확하게는 무 아닌 궁극적인 세계가 와봐야 알 수 있을 거요. 아, 그런데 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는 곳도 모른 채 이렇게 마음 편하게 살다니, 참으로 우리는 무심한 사람들인가 보오.

 

어느 시인의 어투로 말을 걸겠소. 그대, 어느 별에서 오셨소? 잠시 지구에서 만났으니 함께 지내는 동안 친하게 지내봅시다. 혹시 다시 다른 별에서 만나면 아는 척이라도 하시오. (2010년 2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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