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무엇 하오? 요즘 며칠 동안 비가 오오. 늦은 겨울비요. 이제 추위가 끝났나보오. 비오는 날은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만드오.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은 대개 비오는 날과 연관해서 사연이 많소. 각자 따로 우산을 갖고 나왔지만 함께 붙어서 걸을 때는 한 개로 충분하니,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애틋하겠소. 초등학교 시절도 비오는 날은 낭만적이오. 가사가 정확한지 모르겠구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우산, 파란우산, 찢어진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오가던 시절이 그립고 그리운 오늘이오.
1980년대 초 내가 잠시 신학공부를 하던 중부 독일에는 비오는 날이 참으로 많았다오. 특히 라인 강 근처는 워낙 날씨도 나쁘고 땅도 나빠서 로마 제국이 공격을 아예 포기했다는 말도 있소. 쾰른까지만 식민 지배를 한 것 같소. 쾰른(Köln)이라는 도시 이름이 로마의 식민시(市)를 뜻하는 ‘colonia’에서 왔다고 하는구료. 그리스와 이태리는 맑은 날이 많소. 지중해 바람이 그리스와 이태리를 거쳐 알프스를 넘으면서 찬 공기를 만나 비구름이 많이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소. 우중충한 날이 많은 탓인지 볕이 드는 날이면 많은 독일 사람들이 호숫가 근처에서 일광욕을 즐기더이다.
비가 바로 지구를 살리는 원천이라는 사실을 그대는 잘 알고 있을 거요. 만약 수증기가 하늘에서 구름이 되어 비로 내리는 물리적 현상이 없었다면 지구는 이미 오래 전에, 아마 인류가 시작하기도 훨씬 전에 황무지가 되고 말지 않았겠소? 이러니 비오는 날 흠뻑 비를 맞고 돌아다니지는 못할망정 흥에 겨워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아, 말하다보니 노아 홍수가 생각나오. 그것은 혹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은총이 아닐까 하오. 물론 성서기자는 심판으로 말하지만, 그걸 조금 비틀어서 생각해보자는 거요. 선악과 이후로 아담이 땀을 흘려야 하고, 이브가 산고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도 오히려 은총인지 모르오. 하나님에게서 연유한 것 치고 은총 아닌 것이 어디 있으리오. 우리가 그 비밀을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죽음마저도 은총인 것을, 그래야만 하는 것을!
비오는 날인 탓인지 말이 좀 꼬인 것 같소이다.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도 나를 귀엽게 봐주실 거요. 그대도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마시구려. 비오는 날은 파전이 제격이오. 동동주가 빠지면 안 되겠지. 전화를 줄 테니 이리 오시오. 늦은 겨울비를 기념해서 파전 먹으러 나갑시다. 내가 사는 하양에 파전을 잘 만드는 식당이 있소. ‘정가네’라고 하는 작은 식당이오. 언제 기회가 되면 그 식당을 소개하겠소이다. (2010년 2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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