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탈 교회 시대, 거룩한 씨의 역성혁명 / 신동식 목사(문설연 대표)

새벽지기1 2023. 9. 20. 06:28

탈 교회 시대, 거룩한 씨의 역성혁명

 

현대는 탈 진실, 탈 진리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탈 교회 시대입니다. 교회를 탈출하여 세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도피 성도들의 자유함이 있습니다. 탈 교회 시대를 편안하게 맞이한 것은 ‘가나안 성도’라는 개념이 크게 한몫하였습니다. 그리고 코비드 19 팬데믹(이하 팬데믹)이 불을 지폈습니다. 사람들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편안함을 만끽하게 되었고, 교회 쇼핑을 안방에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로 산으로 놀러 가서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함과 의무감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 걸던 시대가 어리석은 신앙의 전형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도피성도”들의 이유는 다양합니다.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포스트 모던 사회(Post Morden society)를 지나서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세계관의 변화는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거대한 물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입니다. 많은 사람이 열광하였고,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현대적 진화론의 선봉장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의 열광에 휘발유를 뿌린 사람이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현대인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 가능한 것은 “인지혁명”을 통하여 이뤄졌다고 하였습니다. 유발 하라리로 인하여 현대적 진화론은 강력한 팬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뇌 과학의 약진은 진화론을 친숙하게 만들었습니다. 뇌 과학은 진회론을 전파하는 좋은 도구가 되었습니다. 대중적 인지도와 함께 이론적 영향력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적 세계관의 강력한 도전에 교회는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비판이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하였고,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유사과학이라는 용어를 내부에서 서로 겨누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 안에 나타난 유신 진화론은 창조에 대한 전통적 생각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성경관에 대한 의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머물고 과학을 비롯한 일상의 영역에서는 진리가 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불쾌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이단들의 몽니 부림과 일부 대형교회의 지혜롭지 못한 모습과 일부 목사들의 막말과 도덕적 탈선 그리고 정치적 치우침이 교회를 불편하게 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30-40대부터 교회를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는 젊은 층이 없는 경로당이 되어버렸습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다음에 교회를 이어갈 세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다가온 해체주의와 젠더 사상은 젊은 세대들을 점령하였습니다. 사상이 어떻게 왔으며 무엇을 추구하고 있고, 성경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이 젊은 세대들을 사로 잡았습니다. 도덕이 누구의 도덕인지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의 근거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사람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격적 나눔보다 보다는 비인격적 나눔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과학과 철학과 신학에 있어서 변동이 한국 교회와 사회를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세계관이 변하면 사회가 변합니다. 세계관이 혁명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러한 열매가 탈 교회, 탈 진리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거룩한 씨인 그리스도인이 성경적 세계관을 무장하고 시대와 사상을 분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삶의 혁명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경쟁하는 사회에 경쟁없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삶을 보여야 합니다. 이것은 역성혁명입니다. 이 세상 신을 없애는 혁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은 경쟁을 통하여 지배자의 자리에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생각에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은 이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의 창조경륜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창조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점수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창조경륜에 지배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 싸움은 오직 거룩한 씨만이 가능합니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원천입니다. 성경이 무너지면 기준이 상실되는 것이고, 진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없는 곳에는 참된 지유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을 더욱 견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오직 성경의 정신이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씨로 다시금 일어나는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개혁자들은 한결 같이 성경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루터가 성경을 강해하였고, 쯔빙글 리가 성경을 강해하였고, 파렐이 성경을 강해하였고, 칼빈이 성경을 강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졌습니다. 탈 교회 시대를 회복하는 길은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탈 교회 시대를 만들어 온 거품이 탈 성경이었다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간증으로 만족하는 신앙은 거품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갈 때 교회가 세상 신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신동식 목사(문설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