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오병이어 (56)(막 6:42)

새벽지기1 2023. 1. 4. 06:16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의 밥이라고 설명한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서 참된 생명을 경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죽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생명질서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런 세상의 생명질서와 전혀 다른 생명을 예수님에게서 경험했습니다.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달리 예수님이 그 죽음으로부터 죽지 않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다는 경험입니다. 바로 이 부활 생명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며, 첫 부활체가 되신 예수님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의 밥입니다. 부활의 실체적 진실여부는 일단 접어놓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실성을 예수님의 부활에서 제시했다는 것은 옳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가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재생이나 환생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을 생물학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그래서 영원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말이 없어서 ‘영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부활의 실질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영원하다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습니다. 빛의 속도 안에서 움직이는 시간 안에 묶여 있는 우리가 그것을 넘어서는 시간 개념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건 당연합니다. 이는 개구리가 인간의 삶의 따라잡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그보다 더 심각하겠지요.

 

위의 설명이 어떤 분들에게는 현실성(reality)이 없는 관념(idea)으로만 들릴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이 현실성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관해서도 어떤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지 모릅니다. 부활에 관한 성서의 관념이 오히려 훨씬 분명한 현실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보다 더 현실적인 게 이 세상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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