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오병이어 (48)(막 6:42)

새벽지기1 2023. 1. 1. 07:08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지금 우리는 오병이어 사건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저의 설명이 본문에서 너무 멀리 나가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할 분들이 있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말씀을 대하든지 그것을 성서 전체와 연관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병이어 텍스트는 그것만으로 해석될 수 없고 그것이 속한 마가복음 전체와 연결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복음서 및 신약성서 전체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한 게 아닙니다. 구약의 관점과 2천년 기독교 역사 전체와도 연결됩니다. 이는 흡사 한 장의 낙엽을 연구하려면 그 개체 낙엽만이 아니라 그 나무 전체, 그리고 식물 및 생명현상 전체를 그 배경으로 놓아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묵상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성서공부에서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개론의 관점을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개론(introduction)은 기본 방향(orientation)입니다. 마가복음 및 신약성서의 기본 방향을 알아야만 우리는 구체적인 본문 앞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성서공부와 설교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개는 텍스트의 부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마저 거의 대부분 주관성에 빠져버립니다. 성서를 해명하는 사람의 주관성이 성서텍스트를 지배하게 되면, 결국 말씀의 고유한 객관성이 죽어버립니다.


성서개론이나 말씀의 객관성보다는 말씀에서 은혜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남편의 사랑을 늘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아내처럼 우리는 지금 거의 신경증적으로 은혜일원론에 빠져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관적 신앙과 은혜체험을 뛰어넘는 성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몰두하다가 결국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자들과 비슷할지 모르겠군요.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병이어 (50)(막 6:42)  (0) 2023.01.02
오병이어 (49)(막 6:42)  (0) 2023.01.02
오병이어 (47)(막 6:42)  (0) 2023.01.01
오병이어 (46)(막 6:42)  (0) 2023.01.01
오병이어 (45)(막 6:42)  (1)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