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오병이어 (47)(막 6:42)

새벽지기1 2023. 1. 1. 07:05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말씀 묵상의 한계를 벗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어제의 말씀을 조금 더 이어가겠습니다. 저는 어제 바울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일절 침묵하고 있으며, 그런 기적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여기서 사도행전에 묘사된 바울의 선교역사를 거론할 분들이 있겠군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행전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흔하게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바울도 그런 초자연적 사건에 개입되었습니다.

 

형식적으로만 본다면 사도행전은 바울에 관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저자가 바울의 활동에 대해서 기록한 문서이며, 복음서는 각각의 저자들이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서 기록한 문서입니다. 바울에게는 그가 직접 집필한 편지가 있어서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예수님에게는 그런 글이 없어서 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바울의 경우를 봅시다.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 바울 상(像)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 상 사이에는 적지 않는 차이가 있다는 게 신약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와 연관해서 본다면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초능력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의 서신에는 없습니다. (바울의 편지에서 그런 구절을 찾으신 분은 저에게 알려주세요.) 왜 이렇게 다를까요?

 

바울에 관한 사도행전의 보도는 사실을 다룬 게 아닙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이 죽은 지 최소한 한 세대 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미 예루살렘의 히브리파 기독교가 쇠퇴하고 바울의 헬라파 기독교가 주류로 등장할 때였습니다. 그는 여러 구전과 자료를 앞에 두고 바울의 역사를 복원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 당시에 얼마나 정확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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