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 3:23)
세상은 1세기에도 예수님을 미워하였고, 사도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지금도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러한 현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물론 베드로의 첨언처럼 복음을 위한 고난과 우리의 죄로 인한 미움은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교회를 미워합니다.
세상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십자가의 구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알지 못하고 미움이 있는 세상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갑니다.
사도는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실체를 말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형제 사랑함으로 사망을 이기고 생명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자이고 마침내 사망에 이른 사람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랑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3) 그리스도인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습니다. 궁핍한 이들에게 사랑을 흘려보내는 일에 진심으로 감당합니다.
4)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사랑하고 있는 것은 진리가운데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5)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기도의 응답을 늘 받는 사람입니다.
5)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기쁨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장체성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심을 증거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믿음으로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증거하십니다.
주님이 보이시고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을 감당하는 것이 세상의 미움을 이기는 길입니다. 그래서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이유이고, 바울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이 계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령님께 간구합니다. 말과 혀로의 사랑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의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 길을 가라고 촉구합니다. 오늘도 믿음이 믿음되기를 기도합니다.
'좋은 말씀 >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유무 (요일 5:1-12) (0) | 2022.12.27 |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 4:1-10) (0) | 2022.12.25 |
주를 향한 이 소망 (요일3:1-12) (1) | 2022.12.23 |
마지막 때 (요일 2:12-19) (0) | 2022.12.22 |
죄 용서함과 새 계명 (요일 2:1-11) (3) | 2022.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