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죄 용서함과 새 계명 (요일 2:1-11)

새벽지기1 2022. 12. 21. 06:12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11) 

사도 요한은 자신이 서신을 쓰는 이유를 반복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사귐과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 위함임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1:3-4). 그리고 2장에서 와서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사도 요한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소망 없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음에 이르고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죄로부터 구원 받을 길이 있습니다. 바로 대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를 범하여도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대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실 것을 중보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공의를 인하여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여기에 죄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죄에서 자유케 되는 길과 죄와 싸울 수 있는 길을 알려줍니다.

나아가 사도 요한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알면서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 하는 자이며,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입니다. 즉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옛 계명을 말씀으로 주셨습니다(레19:18). 그리고 새계명을 주셨습니다(요 13:34). 두 내용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옛계명, 새계명 말하는 것은 옛 계명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이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사랑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어두움에 속하여 사랑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딛3:3). 사랑은 오직 빛 가운데 있어야 가능합니다. 빛 가운데 있을 때 형제를 사랑합니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빛 가운데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을 통하여 빛과 어둠에 속함이 나타납니다. 사랑이 없는 행위는 반드시 분열과 불신과 미움과 다툼과 정욕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음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