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영봉목사

흐르는 시간 앞에서

새벽지기1 2022. 12. 5. 21:06

     12월 첫 주일입니다. 이럴 때면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새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래 전, 제가 가르치던 대학에서 가나안 농군학교 김범일 교장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분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러분, 인생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내 인생, 앞으로 감자 몇 번 더 캐고 사과 몇 번 더 수확하면 끝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시간을 아끼라는 깨우침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젊을 때는 살아갈 세월이 충분할 것 같아 보이는데, 실제로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저도 30대였기 때문에 웃고 말았는데, 이제 그분의 나이 즈음에 이르니 수긍이 됩니다.

    시편 90편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과 같습니다”(시 90:10)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전도서>에서도 인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전 2:17). 인생은 너무나 짧고, 그 짧은 인생 여정조차 온갖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된다는 뜻입니다.

    한 해를 마감할 즈음이면 이런 비관적인 감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나이가 들어 앞으로 남겨진 나날들을 헤아려 볼 때면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으로 깁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자신의 일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적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환갑을 맞았다면, 21,900일을 산 것이고, 65,000끼니의 밥을 먹은 것입니다. 그 음식을 모두 쌓아 놓는다면 커다란 언덕을 이룰 것입니다. 시간이 쏜 살처럼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인생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또한 인생에는 슬픔과 고난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기쁨과 보람과 환희도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어떤 운동화 회사에서 마케팅을 위해 영업 사원을 아프리카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가 가서 보니 신발을 신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현장 조사를 한 다음, 그 사람이 회사 본부에 보고 합니다. “이곳은 포기해야 합니다. 신발을 신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보고를 받은 사장은 그 나라에 대한 판매 전략을 세웁니다. 그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그곳은 거대한 시장입니다. 아무도 신발을 신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물 혹은 같은 현상을 보아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인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흐름이 현기증 나도록 빠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나날들은 참으로 깁니다. 하루 하루를 귀하게 받아 정성스럽게 사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탓하지 말고, 앞으로 올 시간을 미리 헤아리지 말고, 하루 하루 주어지는 생명을 감사히 여기고 돈독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때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영원을 경험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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