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경건메세지

공감할 수 있건만

새벽지기1 2022. 11. 10. 07:01

공감할 수 있건만

 

“최근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뇌신경생리학자들은

사람의 뇌에 공감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신경세포와 신경체제가 들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소위 거울뉴런과 거울뉴런체계입니다.

이 신경세포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관찰하고 느낄 뿐 아니라,

마치 거울처럼 다른 사람에 게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도 재빨리 알아채고 반응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은 느낌, 같은 생각,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감의 생리적 근거인 셈이지요.”

박성희 저(著) 《공감》 (이너북스, 1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공감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마련된 공감을 위한 신경생리세포는 쓰면 쓸수록 더 촘촘하고 정교해집니다.
따라서 공감 능력은 인생 경험이 늘어날수록 풍부해져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공감하는 능력이 생각보다 시원치 않다고 여겨질까요?”(11-12쪽)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이기적인 죄성 때문입니다.

공감하는 마음을 열어 놓으면 이웃에게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속에서 올라오는 공감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감하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살립니다.
사랑은 공감이고 동행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싸이코패스였습니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면 그 병자에 대한 축하보다는 왜 안식일에 고쳤냐고 합니다.

잔치집에 가서는 왜 금식하지 않냐고 합니다.
공감하지 못하면 마네킹입니다.

사람을 살려내지를 못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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