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는 사람 웃고 있는 사람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지금 어디선가 웃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까닭 없이 웃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웃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엄숙한 시간」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인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면 나 때문에 울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면 그 사람은 나 때문에 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이웃의 아픔과 기쁨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시인이 좋은 시인입니다.
좋은 성도도 그러하고 좋은 목사도 그러하고 좋은 정치인도 그러합니다.
세종대왕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인해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공감이란, 이웃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 씀씀이며,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나서는 행동입니다.
목회를 해보니
머리 좋은 성도보다 마음 좋은 성도가 나은 듯하고,
마음 좋은 성도보다는 손 좋은 성도가 나은 듯합니다.
손 좋은 성도보다 발 좋은 성도가 되어 섬기는 사람이 좋습니다.
관찰하기보다는 애정 어린 성도가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장보다는 형제 자매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성도가 좋고,
목회자의 입장과 마음까지도 알아주면 왜 그리 좋은지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