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예수님은 왜 시몬 형제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본문은 그 대답을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고기를 낚는 것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다는 의미일 텐데, 번역자들이 그걸 우리말로 아름답게 표현할 길이 없었나 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적용된 용어니까 우리가 굳이 다른 단어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겠지만, 자칫 그리스도교의 복음과 선교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제반의 문제들이 이런 용어로 인해 방향을 잃을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에는 그 대상을 도구로 간주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소위 ‘세상 사람들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교회로 끌어들이는 일들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품을 내걸고 사람들을 낚으려고 합니다. 또는 기상천외한 조직을 통해서도 그런 작업을 펼칩니다. 약간 심하게 예를 들자면, 시내 번화가 술집에 고용된 삐끼들이 손님들을 끌어들이듯이 우리는 설치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는 열정적으로 펼칠수록 좋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시겠지요. 원칙적으로는 복음전도는 필요니다. 그러나 무엇이 복음 전도인지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시몬 형제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 자체가 곧 복음 전도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말씀이 예수님의 친언인지, 혹은 마가 공동체의 해석인지는 더 많은 역사 비평이 필요하니까 접어두기로 하고, 설령 예수님의 친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근거해서 현재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그런 전도 방식을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저는 몇몇 이상한 전도 방법만을 문제 삼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을 도구화하려는 그런 발상 자체가 그리스도교와 너무 거리가 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사람을 낚는 일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거나 빛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소금으로, 빛으로 존재하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억지로 세상 사람들을 소금을 만들거나 빛으로 만들려고 지나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존재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구요? 좀 역설적인 말이지만, 선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복음 전도의 책임을 피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 능력이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대목에서 사도 바울을 앞에 내세우겠지요. 옳습니다. 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우리와 같은 마음과 방법으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선교지역에 들어간 일이 없으며, 자비량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오직 십자가와 부활에만 마음을 둔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지금 우리에게는 복음전도 마저 종교적 업적과 만족감의 수단이 되어버린 건 아닐는지요.
그 말씀의 무게를 느끼지도 못하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을 아전인수로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일에 나서기 전에 우선 제자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복음 전도는 없습니다.
주님, 주님을 바르게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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