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회개와 복음 (4)(막 1:15)

새벽지기1 2022. 6. 6. 07:11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어제 묵상의 마지막은 신앙적인 업무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관심을 쏟는 것이 회개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대목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할 마당에 그런 일들을 줄이라는 게 말이 될까요?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그런 축소가 왜 회개인가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오해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그것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가중 중요한 일인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배타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의 구원이 우리에게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그것을 알았으면 하나님에게 찬양을 드리는 일(doxology)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기 위해서 자주 모여야 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세계 선교도 해야 한다고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하게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우기 위해서 마음을 쓸 겁니다. 이게 회개이기도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는 일이 있나요? 아니 하나님을 아는 것에 마음을 두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나요?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과 그의 구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이라는 말은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하나의 도그마로 굳어진 용어에 불과할 뿐이지 하나님의 종말론적 사건과 연결된, 즉 미래생명으로 개방된 용어는 아닙니다. 하나님, 구원, 영광, 통치라는 용어는 이미 교회 안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게 이에 대한 반증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문을 닫자는 말인가, 하고 걱정하실 분도 있겠군요. 그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과도한 신앙생활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거리가 먼, 순전히 종교적 열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확 줄여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지금보다 교회의 물적, 인적 토대는 대폭 줄어들겠지요. 그러나 그런 건 하나님의 나라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원칙적으로만 말한다면 교회는 밀가루 속의 누룩처럼 이 세상에서 소수의 공동체로 만족해야 합니다. 만약 밀가루가 없고 온통 누룩이라고 한다면 밀가루와 누룩의 관계는 허물어집니다.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민족복음화가 이루어진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와 직결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라틴 교회, 중세기의 유럽교회, 볼셰비키 혁명 이전의 러시아 정교회를 우리의 모범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소수로 남는 걸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개 교회나 총회 차원에서 모든 교회들이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한 회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건 우리의 일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경제지표가 약간만 불안해도 삶 자체가 파탄이 날 것처럼 불안하게 생각하는 한 대한민국은 회개가 불가능합니다.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무의미한 일에 소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삶은 없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의 영성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는 이유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겠지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조직으로서의 교회에만 관심을 둔다는 의미이겠지요.

주님, 우리의 삶을,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도록 저희에게 회개의 영을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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